올해 5억원 규모의 신규투자를 추진하던 강연ㆍ모임 플랫폼 전문 A사는 최근 투자 유치에 실패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모태펀드 운용을 맡은 벤처캐피탈(VC)업체가 '창업 연한 3년 내 초기기업'이라는 지원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2010년 4월 창업한 이 업체는 강연이나 각종 모임 참여 희망자를 온라인으로 모집, 이를 주최자에게 이어주거나 직접 강연을 개최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창업 3년 만에 연 매출 10억원 이상을 올리며 역량 있는 벤처기업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추가 기술개발과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금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A업체 대표는 "정부가 지원하는 모태펀드 투자가 창업 초기기업이나 이미 성공해 기업공개 직전인 후기기업에 쏠려 있다 보니, 정작 추가 투자가 절실한 유망 중기(中期) 기업들은 정부 지원은 물론 민간 벤처 투자를 받는 데 어려움이 크다"며 "투자자격을 심사하면서 회사의 실적, 수익모델 등 보다 창업시기를 더 중요시하는 벤처 투자 정책은 문제가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벤처 투자 펀드들이 우후죽순으로 조성됐지만 가장 자금이 필요한 중기(中期) 벤처업체들은 자금 마련이 어려운 '투자 보릿고개'로 고통을 받고 있다. 정부의 직접 지원은 창업 3년 내 초기기업에 집중돼 있고, 정부가 출자한 자금으로 투자하는 VC업체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기 위해 창업한 지 7년 이상 지난 후기기업에 집중 투자하면서 창업 3~7년 사이 중기 벤처들이 정책지원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벤처기업 활성화를 위해 마련한 모태펀드의 올해 운영실태를 보면 신규 투자 중에서 초기기업이 56%를 차지했고, 창업한 지 3~7년 된 중기기업은 24%에 불과했다. 또 투자금액 비중으로도 7년 이상 된 후기기업이 43%로 가장 많았고, 초기기업(35%), 중기기업(22%) 순으로 중기기업에 대한 혜택이 가장 적었다.
벤처펀드운용기간이 5, 6년 안팎으로 짧은 것도 중기기업 성장에 제약요소가 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을 설립해서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기업공개(IPO)를 하기까지 10년 정도 걸리는데 이를 기다려주지 않고 중간에 회수하면 기업은 자금난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한국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미국의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국내에서도 벤처 신화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초기기업을 주로 지원하는 엔젤투자를 통해 검증된 업체를 VC들이 이어받아 투자를 계속하는 단계별 투자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며 "기술과 시장성은 어느 정도 확인됐지만 아직 IPO를 할 단계는 아닌 중기 벤처들이 계속해 연구와 사업 확장을 할 수 있는 투자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