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끼니까 참았지. 자식한테 맞았다고 소문나면 어차피 내 얼굴에 침 뱉는 거야."
전남 장성군에 사는 김모(76)할머니는 아들에게 5년 동안 맞고 살았다. 이혼 후 어머니와 단 둘이 살던 아들 황모(54)씨는 지독한 알코올 중독이었다. 치료를 위해 입원한 적도 있지만 퇴원하면 바로 술을 들이켰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술에 잔뜩 취해 갖은 행패를 부렸다. 몸무게가 40㎏도 안 나가는 어머니를 벽으로 밀치고 손목을 비틀었다. 주위에 있는 물건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김 할머니의 팔과 어깨 등에는 맞은 자국이 선명했다. 아들의 손찌검은 차라리 견딜 만했다. "나가 죽으라"며 동네 떠나가라 퍼붓는 욕설을 들을 때면 딱 죽고만 싶었다. 5년을 참고 참다 할머니는 지난 8월 학대피해노인쉼터로 향했다.
학대받는 노인이 늘고 있다. 6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2년 노인 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노인 학대 신고 건수는 9,340건으로 2011년 8,603건에 비해 737(8.6%)건 증가했다.
경제적으로 자립이 가능하다면 폭력에서 벗어나기가 쉽겠지만 학대 피해 노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연금 혜택은 아직 미미하고, 나이가 들어 돈 벌기는 어렵다. 이 보고서가 분석한 노인 학대사례 3,424건 중 국민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 이하 노인 비율이 69.1%에 달했다.
하지만 대부분 자식에게 학대당하는 노인들은 차마 제 손으로 자식을 신고하지 못하고 장기간 폭행을 감내한다. 사람답지 않은 자식이라도 처벌받을까 걱정이 앞서는 탓이다.
지난 10월에는 경기 고양시에서 중학생 손녀 A(15)양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뺨을 맞는 등 2년 동안 학대를 당해 온 B(71)씨 C(66ㆍ여)씨 부부가 경찰에 발견됐다. A양의 잦은 음주로 C씨와 상담을 하던 고양경찰서 이경애 청소년계장이 C씨 팔에 난 상처를 이상하게 여기고 캐묻고서야 비로소 털어놓은 사실이다. C씨는 "애기 때부터 부모 없이 큰 어린 손녀가 가여워 할아버지와 참고 살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 계장은 "사소한 폭행이라도 즉시 신고해야 추가 피해를 줄일 수 있고 그게 가해자를 위한 길"이라며 "자식들의 폭행사실을 숨기기 쉬운 노인학대일수록 이웃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금주 서울 사이버대 복지시설경영학과 교수는 "경제적으로 자녀에게 의존하는 노인들은 자녀와 갈등 끝에 폭행을 당해도 이들과 분리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피해 노인들 스스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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