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씨구, 좋다.” 20대 청년 5명이 무대에 나란히 앉아 목청껏 추임새를 넣었다. 이들은 공연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소원굿’을 연주하며 저마다 손에 든 꽹과리 장구 북 태평소에 신명을 불어넣었다. 290여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박자에 맞춰 손벽을 치며 청년들의 하모니에 동화됐다.
정서장애 자폐성장애 뇌병변 등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청년들이 모인 사물놀이단 ‘땀띠’의 창단 10주년 공연이 24일 오후 7시 서울 충무로 남산국악당에서 열렸다. ‘땀띠 날다’란 주제로 열린 이날 공연은 지난해 12월 첫 발매된 땀띠의 음반에 수록된 5곡과 단원의 개인무대 위주로 꾸려져 90여분간 진행됐다.
“내 몸매가 너보단 낫지? 내 춤 한번 보여줄게. 한판 놀아보자.” 조형곤(22ㆍ지적장애 2급)씨는 하회탈을 쓰고 뱃살을 드러내고 익살맞게 ‘이매춤’을 추며 쌓은 실력을 과시했다. 박준호(23ㆍ자폐성장애 2급)씨는 관객과 눈을 맞춘 뒤 ‘무을북춤’을 추는 여유를 보였다. 고태욱(21ㆍ정서장애 3급)씨는 공연 내내 힘껏 북을 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단원 5명은 올해 1월 초부터 하루 3시간 이상 구슬땀을 쏟았다. 특히 이날 공연에선 국악그룹 ‘공명’에게 배운 ‘공명악기(대나무 통을 쳐 소리를 내는 악기)’를 연주해 청량한 소리를 선물했다. 이 외에도 중국악기로 알려진 ‘호로쓰’와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에서 주로 쓰이는 드럼 ‘젬베’ 등 각자 5,6개의 악기 연주도 선보였다.
2003년 2월 결성된 땀띠는 그간 50여 차례가 넘는 전국 공연을 해온 프로급 예술단이다. 하지만 이날 단원들의 어깨는 가볍지 않았다. 2009년 이후 4년 만에 무대에 오른 ‘공백’의 부담이 있었다. 신경환(23ㆍ자폐성장애 2급)씨는 혹여 박자를 놓칠까 봐 옆 동료의 북 리듬을 맞춰 장구채를 ‘톡톡’ 치면서 박자감을 유지해 눈길을 끌었다. 이석현(20ㆍ뇌병변 2급)씨는 휠체어에 앉아 여러 북을 드럼 형태로 합친 ‘모듬북’을 빠른 템포로 치다 긴장한 탓에 잠시 몸을 가누지 못하기도 했지만 실수 없이 깔끔하게 연주를 소화해냈다.
무대가 끝나고 객석 곳곳에서 터진 앙코르 요청에 땀띠가 ‘아리랑’을 연주하자 무대 뒤에서 가슴 졸이던 부모들은 서로 껴안으며 눈물을 쏟아냈다. 고태욱씨의 어머니 문미영(51)씨는 “그간 마음 고생을 다 털어버린 듯 홀가분하다”며 “아들이 (연주를) 즐거워하니 원할 때까지 옆에서 응원하겠다”라고 말했다.
땀띠를 창단한 음악치료사 김수진(41)씨는 “어릴 때 상처받아 스트레스 풀려고 악기를 잡은 아이들이 10년이 지나 청년이 돼 무대 오른 것만으로도 코끝이 찡하다”고 말했다. 이날 판매된 음반 등 수익금 전액은 사랑의 열매에 기부될 예정이다.
꽹과리 담당 이석현씨는 공연장을 빠져나가며 말했다. “우리만의 언어로 전하는 도전의 무대는 이어질 거에요. 우린 팀 이름처럼 ‘땀띠’나도록 연습할 겁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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