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말씀에 40세를 불혹(不惑)이라 한다. 더 이상 미혹(迷惑)되지 말아야 할 인생, 세상만사에 스스로 헷갈려서는 안 되는 나이라는 뜻이다. 최근 '불혹 전후의 젊은이들'과 자리를 함께 할 기회가 잦았다. 30년 정도 차이가 나는 자녀세대와는 확연히 다르고, 사회의 후배라고 하기엔 어설픈, 정확히 '반(半)세대' 정도 차이가 나는 그룹이다. 1970년대 초반, 10월 유신 전후로 태어난 세대다. 불혹의 나이라는 그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스스로 깜짝 놀라게 됐다.
그들의 주장은 단순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덮기 위해 통합진보당 RO 사건을 밝혀냈다'고 주장하기에 "그건 그렇다 치자" 정도로 넘어가 버렸다. 그러나 '채동욱 전 검찰총장 문제를 덮어 버리기 위해 모 유명인의 누드 동영상을 세상에 공개했다'고 주장하거나 '남북문제가 꼬여가니 한일관계를 오히려 우리 쪽에서 자꾸 문제 삼는 것 아니냐'고까지 나오는 데엔 "그렇다 치자"며 넘겨버릴 수가 없었다. 언론의 역할을 건드리고 있었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모든 '음모'의 구성원에 기자들까지 싸잡아 집어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처음엔 '이 친구들이 돌았나?'하는 의혹이 일었고, 정신을 좀 차려서 했던 생각은 '왜 이 친구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야성(野性)이 되었나? '하는 의구심이었다. 하지만 찬찬히 내린 결론은 둘 다 아니었다. 그들 부모들이 모두 친여(親與) 성향임은 잘 알고 있었고, 그들도 현재 사회적 기반을 나름 견실하게 유지하고 있는 '잘 나가는 40대 초반' 젊은이들이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가? 아니면 진보당?"하고 물었더니 "아뇨"라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한발 물러서서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이 든다는 얘기지?"하고 물었더니, "아뇨, 주변에 친구들 모두가 그래요"라며 당연하다는 대답이었다.
그게 그렇지 않다며 열심히 설득하려는 입장을 오히려 이해해 주겠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주필이시니까 저희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셔야죠, 뭐"라는 투였다. 그들보다 젊은 30대 후반의 조카들을 만나 얘기를 나눴을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럴 때면 집에 들어와 아내에게 얘기를 꺼내며 '이상한 몇몇 젊은이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겠지?'하며 동의를 구하고자 했다. 일 때문에 30, 40대 젊은이들을 많이 만나는 아내의 반응은 "기자인 당신만 모르고 있다"는 핀잔이었다. 그러고 보니 20대인 우리 아이들도 그런 얘기들을 (아빠의 눈치를 살피며)했었던 듯하다.
40세라는 나이는 우리 사회의 중심이다. 공자가 살았던 기원전 500년 전후만 해도 인생의 3분의 2를 살아버린, 후반기 세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제 반환점을 돌기 시작하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며, 정치ㆍ사회적으로 주류를 이루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40세는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창 미혹(迷惑)될 만한 것들이 많은 나이가 되었으니 정신을 바짝 차려서 혹해선 안 된다는 경계와 당위의 시작으로 해석해야 한다. 50세의 지천명(知天命)도, 60세의 이순(耳順)도, 하늘의 뜻을 알기 시작하고, 세상만사를 수용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겠다.
주변에 미혹되어서는 안될 국가ㆍ사회의 중추 세대의 상당 부분이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을 음모에 입각한 시각으로만 보기 시작했다는 것은 두려운 현실이다. 인터넷 글이나 SNS 트윗 등의 영향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준을 넘어섰다. 스스로 여론주도층이고 정책집행권에 속해 있다고 여기는 불과 '반(半)세대' 위쪽과의 괴리가 이 정도라면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 대화 설득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그것이 현실로, 시대흐름으로 굳어지기 전에 항로를 바로잡고 전도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자도 몰랐다'는 사회의 흐름을 여의도에 갇힌 정치인들이 제대로 알 수가 없겠다. '정치인도 모른다'면 북악산 자락 청와대에서 제대로 감지할 수 없겠다. 불혹의 세대, 40대를 위한 정치권의 태도 혁신이 몹시 급하다.
정병진 주필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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