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이 주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있다고 보던 미국의 기류가 최근 바뀌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3일(현지시간) 전했다. NYT는 “특히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이 서울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접견한 이후 변화가 생겼다”는 분석가들의 발언을 인용했는데 이는 한일 갈등의 책임을 한국에 두는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는 워싱턴의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헤이글 장관은 방한 중이던 9월 30일 박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일문제에 대한 강경 발언을 듣고 “놀랐다”는 말을 주변에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NYT는 “정중한 외교 세계에서 서울 접견은 다소 충격이었다”며 당시 대화의 일부를 소개했다. 접견에서 헤이글 장관은 미국의 아시아 중심 전략과 관련해 박 대통령에게 일본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특별히 당부했다. 그러나 “강철 같은 박 대통령은 대답 대신 일본이 과거 한국에 안겨준 상처의 치유에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강의’를 했으며 미국이 일본이 (반성하는) 행동을 하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으로 면담이 끝났다”고 NYT는 전했다. 이에 대해 한 소식통은 “박 대통령의 의중을 확인한 미국의 반응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의 강경 태도를 한일 갈등의 원인으로 간접 지목한 셈”이라고 말했다.
NYT는 박 대통령이 한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안중근 의사 표지석 건립을 요청한 사실을 거론하며 “박 대통령이 일본과 영유권 갈등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한일 갈등에 끌어들였다”고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그러면서 분석가들을 인용해 “한일 갈등이 중국ㆍ북핵 문제 대처에서 한미일 공동전선을 취하려는 오바마 정부에게 점점 성가신 일이 되고 있다”고 했다. 앞서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한일 갈등이 미국이 아시아에서 직면한 최대 도전”이라고 말했다.
NYT는 서울ㆍ도쿄ㆍ워싱턴발로 작성한 이 기사에서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전략도 한일 갈등 악화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정부가 군국주의 부활이란 한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인정과 같은) 군사력 강화 움직임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NYT는 한일 지도자들의 가족사도 양국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했는데 박 대통령은 부친이 일제시대 군인으로 복무한 과거와 거리를 두려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캐럴라인 케네디 신임 주일 미국대사는 24일자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해석 변경과 관련해 “일본 국민이 선택할 문제”라며 “미일이 공동의 과제와 위협에 대처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일ㆍ중일 관계 악화에 대해 “일본이 외교 해법을 찾아낼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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