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리 필름 하나가 세계 2차전지 시장을 바꿨다. 잘 키운 소재 기술이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 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22일 대전 LG화학 기술연구원의 박홍규 연구위원이 둘둘 말린 필름을 가져왔다. 바로 LG의 중대형 2차전지가 세계 1위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안전성강화분리막(SRS)이다. 전세계 분리막 시장 규모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동안 연평균 약 29%씩 급성장했고, 지난해 1조2,000억원을 넘어섰다.
분리막은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과 함께 2차전지의 4대 핵심소재 가운데 하나다. 리튬이온이 양극재와 음극재를 오가며 충전, 방전을 번갈아 가며 전기를 발생하는데, 이때 양극재와 음극재가 접촉해 단락(일종의 합선)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LG화학이 분리막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10년 먼저 2차전지를 팔기 시작한 일본업체들보다 더 빨리 분리막에 눈을 떴다. 박 위원은 "2차전지의 쓰임새가 늘어나면서 배터리 용량이 커지면, 늘어나는 에너지량 만큼 안전성을 높이는 게 관건"이라며 "이때 중요 소재인 분리막에서 승부가 갈릴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폴리에틸렌 소재로 된 고분자분리막은 열이나 압력을 가하면 쪼그라들고 단락이 일어났다. 치열한 아이디어 회의 끝에 열에 강한 세라믹을 코팅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 식으로 5년여를 고생한 끝에 드디어 2005년 SRS을 완성했다.
시장은 새로운 소재에 흥분했다. LG화학은 노트북용 2차전지를 쓰는 전자업체들에게 먼저 SRS을 적극 소개해 호응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2009년 LG화학은 일본업체들을 제치고 미국 제너럴모터스의 첫 양산형 전기차 '볼트'의 배터리 공급업체로 뽑히면서 강자로 떠올랐다. 이후 포드, 르노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 10여 곳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덕분에 중대형 2차전지 매출은 2009년 본격 양산 이래 4년 만에 6,000억원으로 10배 이상 뛰었다.
소형 2차전지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는 삼성SDI는 어떤 외부 충격에도 터지지 않게 전해질을 고체로 만든 '전고체(All solid) 2차전지'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이미 지난달 시제품을 선보였는데,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지 않아 웨어러블(입는) 스마트 기기에 적합한 초박막 형태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삼성SDI는 2015년에 현재 리튬이온 2차전지와 같은 성능의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SDI는 전기차 등 대형 2차전지 배터리 시장도 적극 공략 중이다. BMW를 비롯, 미국 크라이슬러, 인도 마힌드라 등과 2차전지 공급 계약을 맺었고, 미국 전기차 개발 컨소시엄(USABC)과 공동으로 차세대 전기 자동차용 전지 개발도 진행 중이다. 올 5월에는 독일 전력업체 베막사에 전력용 10MW급 에너지저장장치(ESS)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는 유럽 내 전력용 ESS 중 가장 큰 규모로, 실제 가동 중인 변전소에 설치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업체 관계자는 "여러 차례 까다로운 실증 테스트를 거쳤기 때문에 삼성SDI의 품질 안전성이 독일 시장에서 검증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도 2차전지용 고용량 고전압 양극 음극 전해액 개발에 열심이다. 또 리튬이온 2차전지보다 7배 이상 에너지 밀도가 높은 리튬-공기 2차전지도 개발 중이다.
대전=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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