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의 22일 시국미사가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을 둘러싼 대치정국의 한복판에 종교계 돌발변수가 등장함에 따라 정국경색이 심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가 보혁 진영논리에 급속히 빨려 들어가는 양상이다.
전주교구 사제들의 시국미사는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에 종교계가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파장이 상당할 전망이다. 천주교에 이어 기독교를 비롯한 다른 교계의 일부 진보인사들까지 대통령 퇴진 요구에 가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자칫 사회 전체로 대선불복 논란이 번질 수도 있다. 이와 함께 미사 도중에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을 두둔하는 듯한 취지의 발언이 불거져 정치권은 본질과 상관없는 종북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새누리당은 박창식 신부의 발언을 고리로 강도높은 비난공세에 나섰다. "국가원수를 폄하하는 용납할 수 없는 언행""사회 불순세력""종북구현사제단"등 강경한 발언들이 쏟아졌다. 황우여 대표는 24일 오찬간담회에서 "내가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유승민 의원은 "박 신부는 국민 앞에 고해성사하고 석고대죄하라"며 여야가 이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고 제안했다. 황진하 의원 등 군 장성 출신 의원들도 "사제의 제의를 입고 대통령 퇴진을 말하는 것은 정치와 종교는 분리한다는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고 규탄성명을 발표했다.
새누리당은 그러면서 대통령 퇴진 요구가 자칫 종교계 전체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가능성에 당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강도 반발도 파문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민주당은 사제단의 국가기관 대선개입 규탄에는 공감하면서 박 신부의 발언에는 거리를 두고 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사제단의 박 대통령 퇴진 요구와 관련해 "기본적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이 어느 측면에서는 자초한 일"이라고 사제단의 입장을 거들었다. 전날 박용진 대변인도 "사제단의 말씀에 겸허히 귀 기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전 원내대표는 박 신부의 연평도 포격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연평도 포격과 NLL 인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공안통치와 공작정치에 악용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확실한 선을 그었다. 자칫 '종북 프레임'에 갇힐 것을 우려한 분리대응인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종교계의 정치개입이 대선불복 촛불시위 사태로 확산될 가능성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야권은 이를 특검 정국에 적극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반면 여권은 사제단을 대선불복 및 종북 세력으로 몰아 가며 파문 차단에 부심하고 있다. 종교와 정치가 맞물리면서 가뜩이나 불투명한 연말정국을 예측하기가 더 어렵게 된 형국이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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