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님 핸드폰이죠?" 무슨 무슨 상담원이라는 여자가 전화기 저편에서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여자는 번호 열 자리를 또박또박 확인하고 언제부터 이 번호를 사용했는지 묻고서야 죄송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 웬수.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약간은 친근한 마음으로. 노○◯라는 사람은 내가 쓰는 전화번호의 먼저 주인이다. 정확히 말하면, 먼저 쓰던 번호의 먼저 주인. 내가 휴대전화를 처음 장만한 게 대략 13년 전인데 그때부터 계속 그를 찾는 전화가 걸려오고 문자가 날아온다. 점차 뜸해지기는 했지만, 번호를 바꾼 다음에도, 번호연결서비스 기간이 끝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한 번은 새벽에 노○◯의 옛 애인인 듯한 이의 문자폭탄을 받은 적도 있다. 모른 척 넘기기에는 너무 애절한 내용이라 번호 주인이 바뀌었다는 답신을 그쪽 번호로 넣고 오지랖 넓게 위로의 말까지 전했다. 왜 이토록 오래 번호를 방치해 두고 있는 거지? 언제부턴가 나는 그의 안부가 궁금해진 것 같다. 잘못 걸린 전화들을 통해 희미하게 그려진 그의 윤곽이 불안해 보인 탓일까. 대출금 상환 문제로 여러 금융기관이 그를 찾았고, 노동조합에서 그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애를 태웠다. 그가 졸업한 학교의 동문모임에서는 여태 내 번호로 단체문자를 보낸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잠수를 탄 것이든 아니든, 노○◯씨, 어디선가 무사히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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