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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엌 그녀의 식탁] <1> 피아니스트 윤홍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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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엌 그녀의 식탁] <1> 피아니스트 윤홍천

입력
2013.11.2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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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에 정착 보금자리 고를때 넓은 부엌이 선택 기준이었죠친구들에 음식대접 큰 기쁨"자신만의 감성 담으려 노력 "개성 강한 작품 해석" 평과 상통음악만 아는 외골수보다는 풍요로운 삶 꿈 꿔내년 로린 마젤과 협연 무대

음식은 위로이자 나눔이고, 그래서 요리는 누군가에게 나눔을 일구는 아름다운 과정이다. 영국의 세계적인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는 "요리란 행복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고, 뉴욕의 재미 동포 스타 요리사 후니킴은 "매번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조적인 과정인 요리에 희열을 느낀다" 고 했다.

피아니스트 윤홍천(31)씨는 취미인 요리를 종종 연주에 비유한다. "신선한 재료에 정성을 다하고 여러 재료를 창의적으로 혼합해 나만의 조리법을 찾는 과정이 피아노 연주와 닮았다"는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96년 미국 보스턴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로 유학을 떠난 윤씨는 독일 하노버 국립 음대, 이탈리아 코모 피아노 아카데미 등을 거쳐 독일 뮌헨에 거주하고 있다. 뮌헨에 정착할 때 그가 보금자리를 선택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넓은 부엌"이었다.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친구들에게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해야 직성이 풀려서"다.

김규연, 이효주, 조재혁씨 등과 함께 출연해 피아노의 다양한 음색을 선보이는 공연 '8인의 피아니스트'(23, 24, 30일 서울 예술의전당)를 위해 일시 귀국한 윤씨를 21일 서울 강남구 율현동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30일 갈라 콘서트에는 4대의 피아노가 한 무대에 오르는 이 이색 공연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친구들과의 티타임을 위해 준비하곤 한다는 영국식 쿠키인 쇼트브레드와 초콜릿 브라우니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수많은 한국인 연주자들이 국제 콩쿠르 입상으로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리는 것과 달리 그는 음반으로 독일 현지에서 인정 받았다. 슈베르트 후기 소나타 음반이 높은 평가를 받아 2011년 독일 바이에른주 문화장관으로부터 젊은예술가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독일의 빌헬름 켐프 재단 최초의 동양인 이사로 선발됐다. 그런 그에게는 '개성 강한 작품 해석', '독자적인 연주 세계'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쇼트브레드 반죽에 밀가루와 버터, 설탕과 함께 특이하게 찹쌀 가루를 넣고 있는 그에게 "연주처럼 요리에도 나만의 색깔을 담고 싶은 모양"이라고 슬쩍 운을 떼어 봤다.

"어휴, 사실 연주는 제가 뭘 더 해석하는 건 아니에요. 단지 남이 하니까 무조건 그렇게 하는 건 싫어요. 그래서 아마 레퍼토리 선정을 포함해 다른 연주자들과 조금 다르게 보이나 봐요."

얼마 전에는 올해부터 5년 간 목표로 독일 음반사 욈스와 함께 도전을 시작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18곡) 녹음의 첫 음반이 독일에서 출시됐다. 조만간 영국과 미국에서도 발매된다.

모차르트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다. 유독 그가 쿠키와 케이크 굽는 일에 빠진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모차르트 시대의 비엔나는 우아한 멋을 중시해 디저트가 발달했다.

그는 우울할 때도 쿠키를 굽는다. 집안 가득 달콤한 바닐라향이 퍼지면 힘든 순간의 기억도 조금은 잊게 되기 때문이다. 주목 받는 젊은 피아니스트가 무슨 힘든 일이 그렇게 많았던 것일까.

"남들은 참 편하게 연주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까 싶은 때가 있었어요. 2009년 클리블랜드 콩쿠르 3위 입상을 끝으로 국제 경연 출전을 그만뒀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테크닉에만 신경 쓰고 저만의 감성을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콩쿠르 입상 대신 음악가들에게 인정 받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면서 연주 기회도 더 늘었다. 최근에는 직접 지휘자 로린 마젤에게 음반과 편지를 보내 내년 12월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에 협연자로 설 기회를 잡았다. 소심해 보일 만큼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지만 음악에 관해서라면 추진력이 강한 스타일이다. "티켓 판매 등의 부차적인 요소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는 기획자와 달리 지휘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순수한 실력만으로 평가해 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게 윤씨의 설명이다.

피아노는 대표적인 독주 악기인 만큼 홀로 연주하고 연습할 일이 많은 피아니스트는 흔히 독단적이라는 오해를 사기 쉽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앞치마까지 두른 윤씨는 독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는 "음악가가 음악만 아는 외골수가 돼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 "음악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인생을 바친 마리아 칼라스나 글렌 굴드보다는 음악과 함께 풍요한 삶을 살았던 오이스트라흐나 빌헬름 켐프 같은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물론 꾸준한 수련과 인내를 요하는 음악가의 삶은 길고도 외로운 싸움이다. 하지만 "피아니스트는 직업이 아닌 생활 방식"이라고 믿는 그는 "기회가 되면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묘사한 에세이도 쓰고 싶다"고 말했?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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