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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질고 아픈 근현대사 꼿꼿이 걸어 온 어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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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질고 아픈 근현대사 꼿꼿이 걸어 온 어머니들

입력
2013.11.22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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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힘들게도 살았구나 싶다. 이 책이 소개하는 80대 세 할머니의 생애는 모질도록 아프다. 진보정치 운동을 하다가 인생을 확 틀어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로 살고 있는 저자가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더러 맞장구도 치고 슬며시 찔러도 보면서, 함께 웃고 울면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입말 그대로 옮겼다. '흔해빠지고 사소한 늙은 여자들'의 일부러 귀 기울여도 들릴까 말까한 낮은 목소리를 통해 인생과 사회와 역사를 읽는다.

그러니까 이 책은 생애 구술사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까지 잡지 가 펴낸 민중자서전 시리즈가 우뚝한 성과로 남아 있는 것을 빼곤 이 분야 책은 요즘 보기 드물다. '15소녀 표류기 1'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다. 80대 할머니부터 10대 소녀까지 15명의 여성의 목소리를 한 권에 세 명씩 담아 5권으로 기획된 시리즈 1권이다. 여기서 '소녀'는 어리다는 게 아니라 웃는 여자라는 뜻이다. 이 땅의 여성들 삶이 언제 편했던 적이 있던가. 이리저리 치이고 표류하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살아 온, 그렇게 살고 있는 여성들 이야기를 그들의 육성으로 전하는 기획물이다. 내년 상반기에 완간될 예정이다.

'천당과 지옥'이 제목에 들어간 제 1권의 주인공은 김미숙(89), 김복례(87), 안완철(81)이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전쟁, 독재, 개발을 차례로 겪으며 이들이 짊어진 풍진 세상은 여자라는 이유로 견뎌야 했던 가부장제의 굴레 때문에 더욱 무거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평양에서 태어나 해방 무렵 우연히 서울에 왔다가 발이 묶여 버린 김미숙 할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을 홀로 키우느라 남들 손가락질을 받는 미군부대 양색시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렇게 뼈 빠지게 뒷바라지해서 키웠더니, 목사가 된 아들이 어머니더러 회개하라고 통성 기도를 한다.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닌 늙은 어미가 받아친다. "지랄을 하고 자빠졌어. 다른 회개라면 할 거 많아두, 난 그 회개는 안 나와. 지네들 하느님은 어쩐가 몰라도, 내 하느님은 딱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있는 하느님이야. 복음에도 나오잖아. 창녀와 세리와 죄인들을 위해 오신 예수님."

김복례 할머니도 한이 많다. 일제 정신대 징용을 피하려고 동거한 남자에게 매독이 옮아 코가 패어 나갔다. 가족을 팽개친 남편 대신 새끼들 안 굶기려고 온갖 일을 해서 모은 돈으로 겨우 마련한 집은 신작로 낸다고 나라가 빼앗아갔고, 평생 믿고 의지했던 친구는 돈을 떼어먹고 사라졌다. 그래도 오직 자식들만 바라보며 헌신한 덕분에 이웃과 고향에서 좋은 소리 듣고 살긴 하지만, 가슴에 맺힌 것을 다 풀자면 끝이 없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안완철 할머니는 저자의 어머니다. 양반집 막내딸로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렸다. 하루아침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셈인데, 불행은 결혼하고도 계속됐다. 남편이 가장 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자식 키우느라 PX 물건 장사부터 사채놀이까지 다 해 봤다. 가정 폭력의 그늘까지 안고 산 이 억척 어멈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딸이 있어 그나마 낫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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