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의회에서 21일(현지시간) 작은 쿠데타가 일어났다.
상원에서 대통령이 지명한 공직자의 인준을 반대하는 주요 수단 가운데 하나가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다. 소수당이 필리버스터를 하는 한 인준안이 표결에 부쳐질 수 없어 결과적으로 다수당 독주를 막을 수 있다. 다수당은 '핵옵션'으로 불리는 토론종결 투표로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킬 수 있는데 지금까지 그 정족수는 60표(정원 100명)였다. 그런데 이날 상원 다수당인 민주당이 정족수를 51표로 낮추는 법안을 가결 처리했다. 숫자로만 보면 정족수를 9표 줄인 것에 불과하지만, 입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작은 쿠데타로 평가될 만큼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현재 상원은 민주당 55명(민주성 성향 무소속 2명 포함), 공화당 45명으로 구성돼 있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대통령 인준안에 대해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키고 표결로 통과시킬 수 있는 구조다. 이번 핵옵션 처리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승리로 평가되는 이유다. 앞으로 오바마 정부는 2기 집권 과제 수행을 위한 고위 인사 임명이 수월해질 수 있다. 공화당이 오바마 정부의 정책 반대를 위해 필리버스터를 악용하고 있는 금융규제, 기후변화 관련 인사에도 숨통이 트이게 된다. 연준의 경우 재닛 옐런 의장 지명자의 인준 통과가 확실해졌고, 공석인 3명의 이사도 비둘기파로 임명이 가능해졌다.
최대 변화는 연방대법원 다음으로 역할이 큰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 판사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점이다. 연방규제 문제를 다루는 이 항소법원 판사는 현재 민주, 공화당이 4명씩 동수이고 3석이 공석인 상태다. 그간 공화당이 인준을 막아왔지만 이제 민주당 성향 판사로 채워지게 되면 민주 7, 공화 4의 구성으로 진보적인 판결이 양산될 수 있다. 이는 오바마가 공화당이 지배하는 하원을 피해 행정조치로 자신의 정책을 공격적으로 수행할 수단을 갖게 됐다는 것을 뜻한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공화당이 오바마의 행정조치가 법 위반이라고 반발, 항소법원에서 이 사안을 심리할 경우 오바마 정부에게 유리한 결론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역대 대통령 지명 고위공직자의 인준안에 대한 168차례의 필리버스터 가운데 절반이 오바마 정부에서 나타났다"며 당위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반발하는 공화당은 보복을 공언하고 있어 연초로 다가온 내년 예산안 처리와 국가부채 상한 조정협상에 차질이 예상된다. 이번에 대법관 지명자 인준안은 60표를 그대로 유지해 예외를 뒀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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