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다들 벗고 나온 이유가 뭘까"
이달 초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 연극 '사보이 사우나'의 첫 무대를 관람한 관객 대다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극장을 나섰다. 이 작품으로 연출 데뷔를 한 무대디자이너 여신동이 독특한 작품을 보여줄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대사도 없이 오직 외국인 배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독백을 따라 스토리를 이해한다는 게 여간 당혹스럽지 않아서다. 사우나라는 배경 때문에 대략 짐작은 했지만 막이 내려오기 직전 남자 누드모델들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목욕탕을 자아 성찰의 공간으로 연출하려는 의도는 객석으로 거의 전해지지 못 한 듯했다. 결국 제작진은 애프터서비스를 감행키로 한다. 사흘째 날 공연이 끝난 직후 배우와 연출이 관객과 만나는 '사우나 토크'를 열자 의문으로 가득 찬 객석은 50여분 동안 이어진 연장 무대를 반겼다. 여신동 감독의 말처럼 "객석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큰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전자제품에만 애프터서비스가 있는 게 아니다. 요즘 공연계는 객석 사후 서비스는 물론, 관람 전 이해를 돕고 '바람몰이'를 위한 강좌와 행사들을 줄줄이 선보이고 있다. 연극 '사보이 사우나'처럼 공연 도중 예정에 없던 자리를 만드는 사례도 있지만, 대다수 대형 극장은 정례로 이 같은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어 연극 초심자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가을로 접어들며 독일 문호 뷔히너의 사후 200년을 기념하는 연극 '당통의 죽음'과 국내 제작진이 처음 제작한 '단테의 신곡' 등 난해한 작품들이 잇달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제대로 즐기려면 관람 전 원작을 읽고 가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 '당통의 죽음'을 공연한 예술의전당은 초청 관객들에게 공연 프리뷰를 두 차례 제공했다. 연출가인 가보 톰파가 작품 해설을 하고 배우들이 극중 주요 장면을 낭독하는 방식이었다. 이 행사엔 소설 을 쓴 작가 서준환씨가 원작과 무대 작품을 비교하는 자리도 마련돼 객석의 큰 호응을 얻었다.
국립극장은 연극 '단테의 신곡' 공연을 앞두고 민음사의 3부작을 번역 출간한 박상진 부산외대 교수가 진행하는 관객 아카데미를 열었다. 배우들이 직접 을 낭독하는 코너도 함께 마련된 세 차례 행사엔 960여명의 연극 팬들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아카데미에 참석한 박지혜씨는 "배우들의 낭송을 들으니 책으로 읽는 것보다 집중이 잘 되어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며 "다만 사진작가의 강의는 주제와 어긋난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국립극장 측은 "내년엔 창극 공연에 대한 이해도를 끌어 올리기 위해 오페라와 창극을 비교하는 다양한 교실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9월 이후 연극 '광부화가들'과 '바냐 아저씨'를 공연한 명동예술극장도 '예술가와의 대화', '공연 전 15분 강의'등을 통해 객석과 배우, 제작진의 간극을 최소화하고 있다. 내달 4일부터 정보석 주연의 '햄릿'공연을 시작함에 따라 명동예술극장은 7일 정보석과 오경택 연출이 참가한 가운데 햄릿의 현대적 의미를 주제로 관객과의 대화 자리를 준비한다. 10일엔 이혜경 원주대 교수의 해설과 더불어 영화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를 상영하는 행사를 한다. 이 영화는 원작 에 단역으로 등장하는 햄릿의 두 친구에 관한 이야기이다.
국립극단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3부작을 올리면서 관객의 피드백을 받기 위해 오픈 리허설 행사를 열었고 매주 월요일 오후 5시에는 연극의 이해와 관련된 인문강좌를 이어가고 있다.
수동적으로 제작진과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 데 그치지 않는 프로그램도 많다. 연극뿐 아니라 클래식음악, 뮤지컬 공연들도 여러 형태의 사후, 사전 서비스들을 내놓는다. LG아트센터는 공연에 앞서 국내 정상급 아티스트의 지도 아래 연극, 무용, 음악극 등 여러 분야의 창작 과정을 살펴보고 워크숍에서 직접 연기를 해보는 체험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뮤지컬 '베르테르'(내달 4일부터)를 공연하는 예술의전당은 기획사와 함께 괴테의 소설 을 새롭게 읽는 강좌를 열 예정이다.
이 같은 행사들은 '입소문'이 중요한 공연 시장의 특성상 주최 측의 관객 늘리기 전략 차원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더 나은 공연 방향을 잡기 위해 피드백을 구하자는 뜻에서 연출진의 요청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관계자는 "무용극을 현장 구매로 관람한 중년 남자 관객이 연출과 대화에서 배우들과의 소통이 좋았다며 공연 시간을 늘려달라 제안했다"며 "안무가가 3시간까지 만들어 보겠다며 관객의 피드백을 귀담아들었다"고 전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