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와 3ㆍ1운동 및 관동대지진 피살자의 추가 명부가 확보되면서 정부가 일본측에 별도의 배상을 요구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우리 국민에 대한 피해배상이 마무리됐다고 주장해 왔지만 관동대지진 피살자 명부는 처음으로 확인된 터라 일본은 물론 우리 정부도 배상 요구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명단을 정밀 분석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한발 물러서면서도 일본측에 문제를 제기하는 데는 일단 부정적인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19일 "3ㆍ1운동이나 관동대지진은 역사적 사실"이라며 "이로 인한 피해자 문제를 일본측에 제기할 요량이었다면 비록 명부가 없어도 65년 한일협정 체결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거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와서 3ㆍ1운동이나 관동대지진 피해자 명부를 대일 협상에 활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실제 한일협정 체결 당시 3ㆍ1운동이나 관동대지진 피살자 문제는 거론도 되지 않았다. 정부가 당시 일본측으로부터 5억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제시한 청구권 요강은 총독부 채권, 조선은행 예금, 일본 공채, 미수금, 보상금 등 8가지였다. 보상금 항목에는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도 포함됐고 위안부ㆍ원폭 피해자, 사할린 동포 문제 등 3가지는 관심사가 아니어서 청구권 요강에서 빠졌다. 이로 미뤄볼 때 3ㆍ1운동이나 관동대지진 피살자 문제는 아예 요강에 포함시킬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정부는 이번에 발견된 문서가 1953년 2차 한일회담에서 일본측을 압박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이미 일제 강점기 피해자 규모가 100만명에 달한다는 추산이 돌았던 터라 문서로 확인된 23만명의 피해자 규모가 더 적어 실제 회담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학계의 시각은 이와 다르다. 국제법 전문가인 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는 "52년 이후 10여 년간 진행된 한일회담 과정에서 3ㆍ1운동과 관동대지진 피해자 문제를 정부가 일본측에 제기했는지 협상 과정을 상세하게 살피는 것이 순서"라며 "만약 이들 내용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면 이는 기존에 한일간에 양해하지 않은 새로운 사안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얼마든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3ㆍ1운동과 관동대지진 피해자의 명단을 새로 확보한 만큼 일본을 압박하는 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데도 지레짐작으로 소극적 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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