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적한 민생법안과 예결산 심사 처리를 앞두고 여야의 첨예한 대립이 지속되는 와중에 지난 9월부터 방영되고 있는 한 종편 방송의 정치퀴즈 토크쇼에는 다수의 현직 여야 국회의원들이 출연해 강한 예능감을 발휘하고 있다. 서로 포옹하며 풍선을 터트리기도 하고 양손을 맞잡고 신변잡기를 소재로 입담을 펼치는 모습이 목격된다. 지난 주말에는 한 공중파의 특집 방송에 전 현직 정치인 7명이 출연해 권력 속성을 탐색하고 정치의 민낯을 보여주겠다며 멀리 유럽 조지아의 고산지대까지 가서 촬영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을 돌려 세우려는 취지일 수도 있으나 대통령의 시정연설 이후 더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현실에 비춰 이런 프로그램을 복기해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만큼 예능화 되었는지 체감할 수 있다.
정치인의 예능화는 지난 대선 당시 이미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문제는 이 현상이 정치권에만 국한되지 않는데 있다. 예능화는 대중적 인지도를 획득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로 인식되면서 우리 사회 전반의 전문가 그룹 속으로 확산되고 있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본질적인 업에 충실한 전문가들 보다 예능감을 갖고 대중화에 집중한 소수의 인물들이 득세하는 현상도 이 때문이다. 뮤지션, 연기자의 예능화와 같이 대중예술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교수, 의사, 변호사, 작가 등 기타 전문직의 예능화에 이르기까지 예능감이라는 언변술의 바이러스는 급격하게 대중권력의 획득 수단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예능화는 강한 입담을 중시하다 보니 말의 진중함과 깊이 보다는 순발력과 재치가 더욱 중시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전문 분야에 관한 견해를 밝히고 정확한 기록과 측정, 분석을 통한 설명 보다 상대의 말을 맞받아치는 능력, 상식 수준의 달변이 훨씬 중요해진 것이다. 물론 예능이라는 형식은 복잡하고 무거운 담론에 지친 대중에게 쉼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능만 있고 분야별 담론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우매한 대중을 양산하는 수단에 불과할 수 있다는 과거로부터의 경고를 우리 사회는 잠시 잊고 있는 듯하다.
월터 리프만은 한 사회의 여론이 올바로 형성되는 것을 저해하는 요소로 흥미롭고 친근하며 개인적이고 지극히 극적인 것만으로 묘사된 감성적 심리상태를 지적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각 개인이 자기비판, 자아각성을 통해 대중적 인기에 편승하려는 전술적 언행과 언동을 구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자신이 대중화를 추종하며 예능감만 발휘하고 있다면 스스로가 자기혐오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한 사회 내에 예능화가 만연될 때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진지함이 진부함으로 치부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둘째 현실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매우 추상적이고 단순화된 접근방법을 채택한다. 셋째 특정 인물들의 내재된 본질적인 능력과 재능이 아닌 그의 대중적 인지도와 말솜씨가 더 중요한 요소로 평가받는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현재 목격하고 있듯 예능 시사 대담의 범람에서부터 주말 시간을 지배하는 예능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삶 속에서 차지하는 그것의 과도한 비중을 들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소위 잡음 일으키기의 일환으로 상대를 향해 거친 발언을 쏟아 내거나 전문성은 결여된 채 여론에 훈수만 두는 인물들이 오히려 주목을 받는다. 일시적으로는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결국 과거 발언은 잊혀 진 채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문제의 해법은 국민 개개인의 태도변화에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언급했던 미래지향적 시민의식 개혁의 필요성을 의례적인 정치 구호로 치부하기 보다는 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정치적 현상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각, 사회적 병리를 냉정하게 비판할 수 있는 개인별 의식 수준 제고의 과제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만약 국민의식이 제자리에 정체된다면 사회 전 영역에 걸친 예능화 현상은 더욱 확산될 것이고 그로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개개인이 짊어지게 될 것이다. 달콤한 현실 인식의 유혹, 즉 예능화 현상이 지나치게 확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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