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가 내전 중 정부군의 학살 의혹을 투명하게 조사하라는 요구를 거부하면서 국제사회와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불교를 믿는 최대 종족(인구의 74%) 싱할라족에 기반한 스리랑카 정부는 무슬림 소수 종족(18%)인 타밀족과 2009년까지 26년 간 내전을 치르면서 7만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15~17일 열린 영연방정상회의(CHOGM)에 참석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회의 첫날인 15일 마힌다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을 만나 타밀족 학살 의혹을 독립적 기구에 맡겨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캐머런은 회담 후 기자들에게 "스리랑카가 내년 3월까지 조사를 이행하지 않으면 유엔인권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하겠다"고 말했다. 캐머런은 이날 라자팍사와 회동하기 전 타밀족 밀집 거주지역이자 내전 최대 격전지였던 북부 자프나 시를 찾아 난민캠프를 방문하고 내전 중 설치된 지뢰를 제거하는데 340만달러(36억원)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스리랑카를 압박했다.
캐나다ㆍ인도ㆍ모리셔스 정상은 앞서 스리랑카가 학살사건 조사를 방기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항의의 뜻으로 이번 회의에 불참했다. CHOGM은 영국과 과거 영국의 피식민국으로 이뤄진 영연방 53개국 정상의 협의체로 2년마다 개최된다.
라자팍사는 16일 "시간을 들여 내전 중 발생한 사건들을 조사할 것"이라며 영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2005년 집권해 유혈 강공책으로 타밀 반군의 항복을 받아낸 그는 "내전이 벌어진 30년 동안 매일 사람이 죽어나갔다"며 "이런 상황을 종식하는 것이 급선무였다"고 변호했다. 유엔 조사에 따르면 내전으로 사망한 타밀족 7만명 중 4만명 가량이 전쟁 막바지에 숨졌다.
라자팍사는 "온실에 사는 이들이 (우리에게)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며 영국의 요구를 내정간섭으로 치부했다. 그는 "어떤 조사는 시작되는 데에만 40년이 걸렸다"며 1972년 영국군의 총격으로 북아일랜드 민간인 13명이 희생된 '피의 일요일' 사건을 2010년에야 조사하고 책임을 인정했던 영국 정부를 비꼬았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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