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러운 늙은 바보(Busy old fool), 제멋대로인(unruly) 놈. 르네상스 시대의 영국 시인 존 던은 자신의 한 작품에서 이렇게 독설을 내뱉었다. 누구한테였을까. 엉뚱하게도 태양이다. 마음대로 창문으로 비집고 들어오고, 자기한테 맞춰 계절을 바꿔버린다며 건방지고 형편없다고 툴툴댄다.
존 던이 요즘 태양을 봤다면 이보다 더한 시가 나왔을 성싶다. 거참 부산스럽다. 표면 여기저기를 폭발시키질 않나, 지구 입장에서 보면 참 성가신 물질을 뿜어내질 않나 소란이 이만저만 아니다. 태양활동 극대기라서 저 난리라는데, 진짜 그런 건지는 지나봐야 안다.
태양은 넘쳐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할 때마다 밖으로 내보내곤 한다. 이걸 흔히 태양활동이라고 부른다. 요즘은 분출 횟수나 에너지의 양 등이 평소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극대기라는 것이다. 극대기와 극소기는 평균 약 11년을 주기로 번갈아 온다고 알려져 있다.
태양 주변에는 지구처럼 자기장이 형성돼 있다. 이 자기장은 가만 있지 않고 오락가락 움직인다. 태양은 지구처럼 자전도 한다. 그런데 태양을 이루는 물질은 플라스마다. 기체 분자가 엄청나게 뜨거워져 원자와 전자로 나뉘어 있는(이온화) 상태다. 이들이 워낙 유동적이고 불안정해 적도와 극 주변의 자전 속도가 다르다(차등자전). 그로 인해 태양 자기장이 복잡하게 꼬이면서 엄청난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이 에너지가 분출되는 곳이 흑점이다. 바로 아래가 주변보다 덜 뜨거워 색이 달리 보인다.
태양활동이 활발할수록 표면에 흑점이 많아진다. 과학자들은 흑점의 수를 수개월 동안 기록한 다음 변화 추세를 보고 극대기와 극소기를 판단한다. 때문에 수개월~수년이 지나야 정확히 언제가 극대기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오랜 경험상 올해 태양활동 양상이 과거 극대기 중에서도 폭발이 아주 활발했을 때와 유사해 절정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 김연한 책임연구원은 "당초 천문학자들은 올해 중반이 태양활동 절정기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오히려 최근 들어 폭발이 더 활발하다는 관측이 많아 예상이 약간 빗나간 듯하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 태양의 흑점 폭발(플레어)과 물질 방출(CME)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폭발 규모를 보고 1~5단계로 구분하는 국제기준에 따르면 3단계에 해당하는 폭발이 2010년엔 2회뿐이었는데 지난해와 올해(11월 6일 기준)는 11회다. 2011년엔 3단계 폭발이 10회, 4단계도 2회 있었다. 단계가 높을수록 폭발 규모가 크다는 뜻이다.
흑점이 폭발하면 8분 만에 엄청난 양의 X선이 지구 자기장의 영향이 미치는 영역(자기권)에 도달한다. 이어 15분~수시간 안에 각종 고에너지 입자가, 1~3일 안에 양성자와 전자, 헬륨 같은 코로나 물질이 들어온다. 이들이 너무 많거나 에너지가 세면 지구 자기장 구조가 일부 바뀔 수 있다. 자기장이 변하면 전기장도 바뀐다. 그러면 지상 전력망에 문제가 생기거나 전자기 신호로 작동하는 인공위성도 고장 날 수 있다. 실제로 1989년 캐나다 퀘백주에서 일어난 갑작스런 정전이 태양활동으로 전력망이 파손됐기 때문이었다고 뒤늦게 밝혀졌다.
지구 대기권 안에는 이온화한 물질이 많이 분포하는 전리층이 있다. 군부대나 소형 어선, 아마추어 무선통신 등이 전리층을 통해 교신(단파통신)한다. 적도 상공에 떠 있는 정지궤도위성의 신호로 위치를 파악하는 항공기도 극지방을 지날 때는 위성이 보이지 않아 단파통신을 해야 한다. 우주전파센터 예보팀 김재훈 연구사는 "태양활동으로 날아온 X선과 각종 물질들은 전리층에 있는 중성 입자를 이온화 상태로 바꿔 놓는다. 그러면 평소보다 전자가 많아지거나 전리층이 두꺼워져 단파통신에 오류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흥미롭게도 흑점의 위치에 따라 폭발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 폭발 후 X선이나 각종 물질들은 곡선을 그리며 휘어져 지구로 날아든다. 때문에 지구에서 태양을 봤을 때 왼쪽에 있는 흑점에서 나온 물질들은 지구에 도달할 가능성이 적다. 반대로 오른쪽 흑점이 폭발하면 거기서 나온 물질들은 상대적으로 지구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경기 이천과 제주에는 전리층의 변화를 감지하는 전리층 관측기가 설치돼 있다. 이에 따르면 지난 8일 흑점 폭발로 약 15분간 단파통신이 두절됐으나, 바로 회복됐고 군이나 항공사에 별다른 피해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우주전파센터 홈페이지(spaceweather.go.kr)에서 태양활동 변화 정보 제공을 신청하면 누구든지 서비스 받을 수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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