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15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대화록의 삭제ㆍ미이관 경위를 참여정부 청와대 문서관리시스템인 '이지원'의 문서처리 기능을 토대로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람' 버튼을 누른 것을 '결재'로 해석하는 등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초본ㆍ완성본, 미이관 경위
노 전 대통령은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이 2007년 10월 9일 이지원에 올린 대화록 초본에 대해 같은 달 20일 "완성도가 높은 대화록으로 정리하여 이지원에 올려 두시기 바랍니다"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A4용지 3분의 1 분량의 보완 지시를 내렸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지시 문건을 이지원에 올리고 21일 초본이 첨부된 문서관리카드에서 '열람' 버튼을 눌렀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열람'을 사실상 '결재'버튼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결재가 이뤄진 초본은 대통령기록물이며 국가기록원에 이관돼야 한다고 밝혔다.
다른 국가 정상들과의 회담에서도 초본 '열람' 후 수정 지시를 했고, 초본과 이후 완성본이 모두 기록원으로 이관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지원에서 '반환' 버튼 외에 '열람, 시행, 재검토, 보류, 중단' 버튼은 모두 결재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참여정부 관계자는 "검찰의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라며 "반환 버튼은 문서 형식이 틀렸을 때 사용하는 것이고, '열람' 처리된 문서도 나중에 결재할 수 있었다"고 반박했다. 또 "이지원에서 '열람'은 말 그대로 '한번 봤다'는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밝혔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이 대통령의 결재가 끝난 초본을 국가기록원 문서이관 작업 마감일이었던 2008년 1월 31일까지 '종료' 처리하지 않고, 전날 '계속 검토'로 처리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문서를 이관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대화록 완성본의 경우는 결재가 불필요한 '메모보고'로 등록돼 이지원 시스템상에서 결재나 삭제 과정은 없었다. 조 전 비서관이 2008년 2월 14~15일 이지원에 메모보고 형식으로 완성본을 등록했고 2월 18일 이지원을 복제해 봉하마을로 이관된 '봉하 이지원'을 통해 외부로 유출됐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초본 삭제 경위
검찰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2급 비밀로 관리된 것과 달리,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은 국정원에서 1급 비밀로 보관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고 밝혔다. 또 "이지원에 있는 대화록 파일은 없애도록 하라. 회의록을 청와대에 남겨두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조 전 비서관은 백종천 전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상의해 2008년 1월 30일에서 2월 14일 사이 청와대 업무혁신비서관실에 대화록 초본 삭제를 요청했고, 행정관 A씨가 이를 삭제했다. 참여정부 일부 인사들은 이지원에는 삭제 기능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삭제매뉴얼이 이지원 문서(개발업체 작성)로 발견됐다. 조 전 비서관은 2월 14일 이지원 메모보고를 통해 "동 회의록의 보안성을 감안, 안보실장과 상의하여 이지원의 문서관리카드에서는 삭제하고, 대통령께서만 접근하실 수 있도록 (완성본을) 메모보고로 올립니다"라고 적었다. 검찰은 이를 노 전 대통령이 삭제 및 미이관을 지시한 증거로 보고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 측에 따르며 조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이 삭제를 지시했다고 진술한 적이 없으며, 2000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도 청와대에 남기지 않아 이번에도 그런 관례를 따른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히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대화록 삭제ㆍ미이관 고의성
검찰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대해 보안성을 강화해 1급 비밀로 취급하라고 노 전 대통령이 지시한 것 등을 토대로 삭제ㆍ미이관에 무엇인가를 감추려는 고의성이 있다는 취지의 설명을 하고 있다. 국정원은 대화록 수정본 완성 후 2008년 1월 3일 1급 비밀로 지정했다가 2009년 3월경 2급으로 재분류했고, 올 6월 다시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공개했다.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이날 수사결과 발표에서 "김만복 전 국정원장도 (검찰 조사에서) 대화록의 1급 분류는 과잉이었다고 말했다"며 "2급 비밀은 최단 15년, 최장 30년 후에는 다시 지정하지 않으면 모든 국민이 다 볼 수 있는 문서"라고 말했다.
그러나 1급 비밀도 정권 이양 후 청와대와 장관급이 모두 볼 수 있는 문서라는 점에서 '보안성 강화'의 의미를 검찰이 악의적으로 해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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