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만큼 도시에 대한 사유가 풍부하게 쏟아지는 때가 없다. 그리고 귀촌 열풍이 지금처럼 연령대를 불문하고 뜨겁게 일어난 적도 없는 것 같다. 도시에 남거나, 남기로 결심한 이들은 좋은 도시가 무엇인지, 그리고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할 때다. 여기에 도움을 줄 만한 책 두 권이 나란히 나왔다.
은 지난 몇 년 간 전국의 도시 풍경에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킨 7명을 인터뷰한 책이다. 소비에 매몰된 홍대 거리에 책 읽는 풍경을 도입한 서울와우북페스티벌 기획자 이채관, 농사를 예술 작품으로 바꿔 도시 한복판에 놓은 쌈지농부 창업자 천호균, 도심공원 사업으로 도시의 허파를 조성하는 데 기여한 서울숲 운영자 이강오, 시골 전통시장에 주민들이 참여하는 합창단을 만든 커뮤니티 플래너 오형은, 홍대클럽데이 행사로 도시의 욕망 에너지를 콘텐츠화한 최정한, 오래된 도시 전주를 청년들의 땅으로 바꾼 사회적기업 이음의 대표 김병수, 마을 벽화의 창시자 격인 공공미술프리즘 대표 유다희가 그 주인공이다. 여기에 '시적인 삶의 복원을 위해' 글쓰기 강좌를 하는 작가 은유가 인터뷰를 맡았다.
책에 소개된 7인은 도시 재생이나 공공미술이란 개념이 채 정립되기도 전에 스스로 움직인 자생적 도시기획자들이다. 책은 이들이 일궈낸 성과뿐 아니라 도시를 바라보는 각자의 관점과 그 관점이 태동하게 된 과정에 집중, 도시를 터전으로 삶을 영위하는 모든 이들에게 생각거리를 던진다.
와우북페스티벌 기획자 이채관은 "나는 책벌레가 아니다"란 말로 북페스티벌과의 인연을 풀어 놓는다. 책에 대한 애정을 주체하지 못해 책 축제를 연 것이 아니라는 그의 말은 자연스럽게 도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은 도시에서 책이 소비되는 풍경이었다. 한 도서전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책들이 일개 상품으로서 소비되는 것을 본 그의 머리 속에 '책을 좀 더 문화적으로 소비할 수는 없을까'란 불만이 싹텄다. 여기서 시작된 와우북페스티벌은 일년 내내 소비의 열기에 들떠 있는 홍대 주차장 거리에 단 며칠 동안이나마 사색적인 감성이 흐르는 풍경을 만들어냈다.
"어느 하루가 특별하게 설계되는 거죠. 대개의 음악 축제는 춤추고 흔들고 난리가 나는데 책 축제는 느긋하게 도시의 여유를 즐기는 점이 다릅니다. (중략) 축제를 통해서든 책을 통해서든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서든 거기서 자기 변화를 끌어내고 도시의 변화를 낳는 것입니다. 하나의 장면이 홍대 앞의 도시 문화, 도시 감성을 바꿔내면 좋지 않을까요?"
공공미술프리즘 대표 유다희의 시작은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감이었다. 내면의 세계에 매몰돼 있던 미술학도가 공공에 눈을 뜬 것은 사회인이라는 딱지가 달리면서다. '작품을 팔아 먹고 사는 것 외에 이 사회에서 예술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2003년 서울 가리봉동의 한 초등학교에서 본 풍경은 이 질문에 대한 강렬한 답변이었다. 가난에 방치된 아이들이 7m 높이의 방음벽에 둘러싸인 초라한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보며 그는 공공미술을 업으로 삼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공공미술의 의미와 가치가 알려지기 전이었다. 지자체들로부터 '우리는 그런 사업 필요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이 일상이 될 즈음 경기도 안산시청의 공무원이 긍정적 반응을 보내왔다. 이것이 지금 공공미술의 상징과도 같은 마을 벽화가 탄생하게 된 계기다.
"안산 상록수역 벽화 작업을 1년 동안 진행했습니다. 칠십 넘으신 할머니, 8개월 된 임산부, 40대 아주머니, 아이들이 함께 모여서 콘크리트 벽에 그림을 그렸죠. 그때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나요. 내가 죽어서도 나의 흔적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고."
마을 벽화 프로젝트로 인해 공공미술프리즘이 널리 알려졌지만 그들의 작업은 장소와 수단을 가리지 안는다. 버스 좌석 뒤에 붙은 점집•대출 광고가 시민들에게 시각적 폭력을 행사한다고 여긴 그는 전시장이 없어 헤매는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그 자리에 전시했다. 놀이터를 만들 장소가 없는 동네에서는 담벼락에 구조물을 설치해 아이들이 잡거나 기어올라 놀 수 있도록 했다.
"도시기획자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에요. 삶에 대한 생각이 곧 도시 기획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평범한 주부와 엄마로 살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예술적 필요를 고민하는 그의 말은 정부 주도의 일방적 공공미술이 각종 부작용을 일으키는 요즘,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건축 및 도시 설계자인 이훈길의 는 도시의 약자들을 주목한다. 도시의 약자들이란 장애인, 임산부, 노인, 어린이 등 신체적으로 불리해 도시와 건축이 제공하는 공간과 시설을 충분히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이른다. 저자는 '장애인에게 편한 것은 모두에게 편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들과 눈높이를 맞춰 도시와 건물을 관찰한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도시의 색채, 촉감, 냄새, 소리에 대한 관심을 일깨운다.
이중 소리가 만드는 풍경 즉 사운드 스케이프(soundscape)는 비장애인에게도 중요하지만 시각 장애인에게는 도시와 건축을 인식하고 누리는 데 핵심적인 요소다. 가장 기본은 소음을 제어하는 것.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은 발걸음 소리 같은 반사음을 통해 장애물 간의 거리를 추측하고 자기가 처한 공간의 크기와 재료 및 성격을 파악한다. 그러나 자동차 경적과 같은 도시 소음이 자신이 내는 소리보다 커질 경우 이들은 오감 중 또 하나를 잃는 셈이 된다. 미국 시애틀 프리웨이 파크에 있는 벙커 힐 스텝은 언덕에 계단을 만들고 그 가운데 작은 분수를 설치해 도시 소음을 효과적으로 줄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종소리도 위치 표식의 기능과 함께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저자가 약자의 눈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이유는 그것이 일반인들의 행복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내 도시 건축물의 대부분은 건강한 일반 성인을 기준으로 설계돼 작은 문턱에서부터 계단, 화장실, 엘리베이터까지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도시와 건축에 당연한 듯 배어 있는 약자에 대한 무관심은 일반인들 마음 속에 자리 잡은 비인간성이라는 이름의 장애를 반영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약자를 배려하는 환경 조성에 모두가 관심을 기울일 때 비로소 일반인들이 가진 내면의 장애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