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십니다. 십 수년 전 어머니와 이혼 한 뒤로 아버지께서 힘들게 가정을 꾸려온 걸 잘 알고 있지만, 전 학교에서 매일 사고만 쳤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허리디스크로 아픈 몸을 이끌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최근엔 아버지의 낡아빠진 점퍼를 보고 죄송한 마음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용접 불꽃이 튄 탓에 군데군데 솜털이 빠져 나와 다 해진 점퍼를 보니, 유행하는 옷이며 신발, 휴대폰을 사달라고 졸라댔던 제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 따뜻한 점퍼 하나, 신발 한 켤레라도 꼭 선물하고 싶습니다. 어릴 때 이후론 사랑한다는 표현 한 번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제가 아버지 많이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어요."
지난달 서울YMCA 청소년상담실로 충북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Y양의 사연이 도착했다. 서울YMCA가 처음 실시한 '소원우체통'에 접수한 사연이었다. 서울YMCA는 지난달 7~25일 전국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평소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을 편지와 이메일로 적어 보내도록 했다. 가정 형편 등으로 포기했던 학생들의 소원을 대신 이뤄주겠다는 취지였다.
접수된 사연 중 최종 심사에 오른 사연은 총 5건. 소원우체통 선정위원회는 지난 8일 Y양의 사연과 함께 중학교 진학 예정인 K양의 사연을 공동 지원자로 선정했다.
서울 강서구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K양은 새 책상을 갖고 싶다는 소원을 손 편지로 써 소원우체통에 보냈다. 어머니는 10년 전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지방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생활하고 있어 현재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K양은 편지에 또박또박 소원을 썼다. "지금 쓰고 있는 책상은 다른 사람이 쓰던 거라 많이 낡았습니다. 할아버지께 책상을 사달라고 부탁 드리기가 죄송해서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이제 중학교에 올라가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새 책상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소원우체통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단순히 재정적인 지원만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원이 이뤄지는 경험을 통해 소외 계층 청소년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응원하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됐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함께 의지해 살아가는 가족간의 사랑을 북돋는 것은 덤이다.
소원우체통 선정위원장을 맡은 임상렬 서울YMCA 청소년위원장은 "사회에 대한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청소년들에게 '우리 사회가 결코 각박하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소원이 이뤄지는 순간 느낄 보람과 성취감은 청소년들이 앞으로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원우체통 운영 자금은 시민들의 기부를 통해 마련되며, 서울YMCA는 매달 1명씩 지원자를 선정해 꿈을 실현해 줄 계획이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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