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서울 모처에서 한국과 미국의 자폐인부모단체가 주최하여 자폐인 옹호를 위한 국제컨퍼런스가 개최되었다. 자폐인은 자기 자신에 비정상적으로 몰입한 자폐상태가 지속되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일에 어려움을 갖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는 등록장애인 기준으로 자폐성 장애인의 수가 2012년 기준으로 1만6,906명으로 전체 장애인의 0.7%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신생아 38명 중 1명 꼴로 자폐아가 출현한다는 결과도 있고, 전 세계적으로 1% 정도의 자폐아 유병율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자폐인옹호단체인 오티즘 스픽스(Autism Speaks)는 자폐아를 위하여 유병율 연구·조기발견·자폐증 원인 연구 등을 위해 2억 달러를 투자해왔고, 전세계의 자폐인들을 위한 인식제고, 연구확대, 서비스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유엔 총회에서 매년 4월 2일을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로 정하는 총회 결의를 받아냈고, 이 날을 기리기 위해 2010년부터 'Light it up blue(푸른 빛을 밝혀요)' 캠페인을 벌여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35개국의 7,000여개 빌딩에서 파란색 등을 점등하는 결실을 얻어내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부모단체를 중심으로 2003년 장애인교육권연대를 결성하여 2007년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제정되었고, 연이어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이 제정되었으며, 지난 2012년 2월에 자폐인사랑협회를 포함한 발달장애인 관련 4개 단체가 모여 발달장애인법제정연대를 꾸려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의 통과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날 종합토론의 자리에서 모 대학에 재학 중이라는 자폐인 당사자가 발제자 및 토론자에게 항의성 질문을 던졌다. 질문의 취지는 자폐인 옹호를 위한 컨퍼런스에 자폐인 당사자의 목소리는 전혀 들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고,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었기에 모두가 공감하였다. 다른 모든 권리옹호의 궁극의 목적이 되는 권리옹호는 당사자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자기의 의사를 표명하는 자기권리옹호이다. 자폐인을 위한, 다른 장애인을 위한, 그 외 모든 소수자·사회적 약자를 위한 권리옹호운동도 결국엔 당사자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청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글러브'는 청각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였음에도 한국영화라는 이유로 자막을 삽입하지 않아 정작 청각장애인들은 그 영화를 볼 수가 없었다. 아직도 수많은 정신질환자들이 사회로 나오지 못하고 정신병원에서 한 평생을 지내고 있으며, 그보다 더 많은 장애인들이 장애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도심 재개발이 이루어지면, 그곳에 수많은 세입자들이 거주해왔음에도 하루아침에 강제철거를 단행하여 그들의 터전을 산산이 부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성소수자들이 지역사회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들의 존재는 아직도 철저히 부정당하고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자폐인들은, 청각장애인들은, 수많은 정신질환자와 장애인들은, 수많은 재개발지역의 세입자들은, 지역 곳곳에 있는 성소수자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그들 곁에서 듣지 않으면 듣기가 어렵다.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단정짓지 않는 일, 누구든지 함께 할 수 있는 여지를 두는 일, 어떤 사안에 관해 보편적으로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일, 그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 모두는 실존하는 존재가 될 수 있고, 모두가 존중 받는 사회에 성큼 다가설 수 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고전적인 슬로건은 이렇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습니다(We are everywhere)."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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