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노인
며칠 전 낮에 종로 방향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가 행동이 어딘지 좀 부자연스러운 어떤 노인을 보게 되었다. 노인은 정류장에 내리려는 듯 버스 출구 쪽으로 다가가다가 다시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그러곤 몇 정류장을 더 간 노인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 쪽으로 가는 듯하더니 도로 자리에 앉았다. 길을 잃었나 아니면 내리는 곳을 잘 모르나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나도 태평한 것으로 보아 그런 의심을 하는 건 그다지 타당하지 않아 보였다. 그는 짐 같은 것도 없었고 복장도 마실을 나온 듯한 평상복이었다. 아마도 노인은 목적지를 특정하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니까 그는 한낮의 시간을 때우기 위해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버스를 탄 것으로 보였다. 그런 생각이 확신처럼 들자, 어디서나 내려도 무방한 그의 좁은 등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노인은 다음 정류장에 내려도 되고 그 다음 정류장에 내려도 되는 것이다. 허비해야 하는 그의 여생이 갸륵한데, 그도 젊었을 때는 번다한 욕망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을까. 결국 나도 언젠가는 저 노인처럼 내릴 곳을 정하지 않고 버스를 타는 시간을 맞게 되겠지. 우리는 무엇입니까 속으로 그에게 물을 때, 마음에 들지 않는 정류장에 내리더라도 후회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엉뚱한 대답을 하는, 노인의 무표정한 등을 나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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