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 모임이 더 잦아진다. 갖가지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끼리 만나서 즐겁게 이야기하고 술 한잔을 해야 1년이 넘어가는 게 한국사회다. 그런데 이렇게 날짜를 따로 잡고 장소를 예약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다. 여러 사람들, 회원들의 일정을 두루 감안해야 하고 만나기 편한 곳도 미리 정해야 한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아예 날짜를 고정하기 일쑤이다. 나도 그런 모임이 꽤 있다. 두월회, 이건 매달 두 번째 월요일 저녁에 만나는 모임이다. 화사회는 네 번째 화요일 점심에 만나는 모임이다. 막수회는 마지막 수요일 저녁에 만나는 사람들의 단체명이다. 말목회도 있다. 마지막 목요일의 점심모임이다.
몇 년 전에는 이화회라고 해서 두 번째 화요일에 만나 점심을 먹는 것도 있었는데, 웬일인지 시들해져 참석자들이 줄더니 슬그머니 없어지고 말았다. 그게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보니 돈 때문인 것 같았다. 똑같이 회비를 내서 운영하는 게 아니라 돌아가면서 밥을 사는 식이었다. 그런데 은퇴한 사람들이 돈이 많을 리 없고 자꾸 얻어먹다 보면 저절로 나가기 싫어지기 마련이다. 무슨 좋은 일이 생기면 자진 신고하고 한 번 쏠 텐데 그럴 만한 건수도, 돈도 없는 사람은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요일을 집어넣어 이름을 짓다 보니 같은 이름의 단체가 많다. 사람들은 생각하는 게 다 비슷비슷하다. 언젠가 두 번째 수요일 저녁에 교대 역 부근의 어느 식당에 갔던 사람이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이수회 회원인 그가 식당에 들어가니 ‘이수회’라는 예약단체가 네 개나 칠판에 씌어 있었다고 한다. 다 같은 이수회니 알 수가 없잖나? 그래서 이수회라고 쓰고 괄호 안에 대표자 이름을 적어 놓았더라는 것이다.
각 이수회는 그 식당이 만나기에 좋고 음식값도 싸서 늘 회식장소로 삼고 있는데, 예약을 받을 때마다 식당 측은 어떤 “이수회냐?”고 묻곤 한다. 장소는 그렇다고 하고 왜 수요일 모임이 많은 걸까? 1주일의 한가운데인 수요일에 한잔 해야 몸에 좋은 걸까? 그러니까 수요일은 술 마시는 날? 요즘은 금요일을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라고 하던데, 그건 젊은 사람들 이야기이고 나이든 사람들은 대체로 금요일 저녁에 약속을 잡지 않는다. 토요일의 즐거움을 위해서 몸을 아끼는 것이다.
제일 만나기 좋고 만만한 게 수요일 아니면 목요일이다. 나는 마지막 수요일 저녁에 막수회가 있고 마지막 목요일에는 점심을 먹는 게 있어 저녁 약속은 그때 그때 하고 있다. 아, 그리고 매달 29일 점심에 만나는 모임도 있지. 물론 그날이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되면 금요일로 앞당기는 식이다.
그런데 막수회가 요즘 뜸해졌다. 회장이 “만나서 술만 마시지 말고 뭔가 생산적인 걸 하자.”면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더니 꿩 구워먹은 소식이다. 사실 막수회는 마지막 수요일에 만나는 모임이라는 뜻 외에 ‘막 나가는 백수들’이라는 뜻이 있다. 전부 직장에서 은퇴하고 백수가 된 친구들이 3년 전부터 만나온 건데, 나는 백수는 아니었지만 끼워준다고 해서 그 모임에 나갔었다.
어이, 회장님! 막수회를 어떻게 할 참이여? 보아하니 어디 다시 취업을 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빨리 개선안을 내놓아 새롭게 운영을 하든지 아니면 회장 자리를 내놓으시든지 그러시게. 뭐 그런다고 내가 회장을 하고 싶다는 건 결코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마시고!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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