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불법자금 수백억원을 조성해 세무당국에 납입 내역을 통보할 의무가 없는 비과세보험에 은닉한 인쇄업자와 이 돈을 유용한 보험설계사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무자료 거래로 만든 비자금 수백억원 가운데 수십억원을 개인적으로 쓴 혐의(횡령)로 이모(69)씨에 대해 13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보험에 가입된 이씨 비자금 중 약 60억원을 개인용도로 사용한 모 생명보험사 보험설계사 A(58ㆍ여)씨에 대해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보험가입 대가로 금품을 제공한 다른 보험회사 보험설계사 B(58ㆍ여)씨와 이를 챙긴 이씨 부인(68)을 보험업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소규모 인쇄업체를 운영하는 이씨는 1992년 1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무자료 거래로 조성한 비자금 약 500억원을 본인과 가족, 직원 명의 차명계좌 60여 개에 입금하고 이중 37억원을 생활비 등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이씨는 비자금 대부분을 수익률이 높은 연금보험 600여 개에 분산 은닉했고 234억원은 2011년 캐나다로 반출했다. 2010년 캐나다 영주권을 취득한 이씨는 취득 경위는 따지지 않고 본인 명의 재산만 확인하는 재외동포 해외반출 절차를 통과해 불법자금을 반출할 수 있었다.
2001년부터 이씨 비자금 약 200억원을 150여개 보험상품으로 관리한 A씨는 2007년 3월 기존 보험 해약 뒤 다른 상품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반환된 보험금 101억원 중 60억원을 부동산 구입 등에 사용했다. A씨는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보험가입 대가로 3억5,000만원을 6차례에 걸쳐 이씨 부인에게 준 혐의도 받고 있다.
이씨의 또다른 비자금 200억원을 150여개 보험으로 관리한 B씨 역시 이씨 부인에게 2억2,500만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보험설계사들은 법이 정한 최대 3만원 이하 상품을 제외하고 가입 대가로 특별이익을 제공할 수 없다.
경찰은 A,B씨가 이씨 비자금을 운용하며 압도적인 보험계약 실적을 올려 수 차례 사내 '보험왕'을 차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씨의 탈세 행각을 국세청에 통보하는 한편 비과세보험을 악용한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한편 A씨는 "60억원은 보험료로 모두 납입했고 이씨 부인에게 준 돈은 세무조사 비용 보전 차원"이라며 "이씨와 거래하기 전에도 보험왕을 했는데, 구체적 사실 관계 확인 없이 명예를 훼손한 경찰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반발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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