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계열사의 투기등급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불완전판매 했다는 동양증권직원들의 '양심 고백'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법적인 효력이 높지 않아 피해 고객들의 원성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높다.
12일 한국일보가 동양그룹의 부도 사태로 피해를 본 고객으로부터 입수한 확인서 및 각서에 따르면 동양증권 청주본부점의 홍모 지점장은 8일 "위험성 있는 채권 및 신탁 판매를 하면서 충분히 위험성을 고지하지 않는 등 불완전판매를 했음을 인정하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자필로 작성했다.
확인서에 따르면 홍 지점장은 고객의 비밀번호를 미리 확보해 전화상으로 상품 가입을 권유한 뒤 직접 계약을 체결했지만, 이후 상품의 위험성 등을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또 고객이 원금손실 위험을 수 차례 물었지만 '동양증권은 대출이 없기 때문에 절대 망하지 않는다' 같은 말로 안심시켜 계약해지나 환매 등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고 인정했다.
아울러 홍 지점장은 "고객에게 매달 23일에 50만원씩을 동양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지정한 계좌로 송금한다"는 각서(사진)를 별도로 작성하기도 했다.
해당 피해자는 청주에 사는 70대 이모씨 부부와 아들 등 3명이며, 이들은 총 1억원이 넘는 금액을 동양 관련 회사채 등에 투자했다. 이씨는 "몸이 좋지 않아 시골에서 키우던 소를 모두 팔아 마련한 돈을 동양증권에 맡겼다가 전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고 호소했다.
다른 지점에서도 비슷한 확인서나 경위서를 받아낸 사례가 있다. 또 다른 피해자의 제보에 따르면 동양증권 인천점의 한 직원은 "상품 권유 과정에서 위험성에 대한 문의가 여러 번 있었지만 계열사 지분구조 및 동양시멘트 주식 담보 등을 이유로 안정성을 강조하고 위험성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경위서를 고객에게 제출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 같은 확인서가 분쟁조정이나 소송과정에서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하기 어렵다고 본다. 한 법무법인의 변호사는 "원금보장을 약속하는 각서 등은 유사한 과거 소송에서 법적인 효력이 없었던 사례가 많다"며 "나중에 법정에서 피해자들의 강요에 의해 작성했다고 진술하면 확인서는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피해자를 달래는 용도로 확인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동양 사태는 그룹과 감독당국 등 책임 소재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법원에서 불완전판매를 인정해도 해당 직원이 직접 배상까지 하게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법원 판결로 배상금이 결정될 경우 통상 회사측의 구상권 청구로 해당직원이 약 25%를 배상하게 되는데 동양 사태의 경우는 구상권 청구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피해 사실이 명백할 경우 확인서가 유리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청주지점의 사례는 지점장이 본인 돈으로 배상을 하겠다고 약속할 정도로 불완전판매를 인정한 만큼 배상 비율을 높이는 데 유리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