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한 기간은 1,000일이 조금 넘는다. 그러나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가 사망한 뒤 지금껏 그를 다룬 책이 1,000권 이상 발간됐을 만큼 그의 인기는 여전하다. 사망 50주년을 앞두고 케네디 열기가 다시 뜨거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가 추천한 TV 방송의 특집 다큐멘터리만 15개에 이르고 케네디를 다룬 신간도 최근 20종 이상 나왔다.
하지만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소 냉정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요즘 학생들이 배우는 케네디는 그들의 조부가 배운 케네디가 아니다"며 지난 50년간 교과서에 기술된 케네디 평가의 변화를 추적했다.
사망 5년 뒤인 68년 고교 교과서는 케네디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그리면서도 그를 젊고 모험적이며 미국의 진보적 이상을 부활시킨 지도자로 기술했다. 이런 격찬은 한동안 이어지다가 80년대 중반 이후 시들해졌다. 평가가 뒤바뀐 대표적 예가 쿠바 미사일 위기와 관련한 것이다. 68년 교과서가 케네디의 강인함과 자제력, 힘의 사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력의 결과로, 75년 교과서가 진정한 정치인 케네디의 본성이 완벽하게 드러난 경우로 이 사건을 각각 기술한 것과 달리 83년 교과서는 케네디의 승리가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강경세력에 의해 축출됐다는 점에서 공허하다고, 98년 교과서는 핵전쟁 위기를 부추긴 케네디를 영웅 취급한 것이 성급했다고 각각 수정했다. 2009년 교과서는 심지어 미국 코 앞에 공산 정부(쿠바)를 유지시키고 소련의 장기 군비 확장을 자극한 굴욕적 사건으로 격하했다.
베트남전과 관련한 평가도 변하고 있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베트남전에 가망이 없자 케네디가 미군 철수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비밀 해제된 자료는 그가 베트남전을 확대시킨 '냉전의 전사'라고 폭로했다. 그가 민권운동에 관심이 많은 이상주의적 정치인이 아니라 차가운 현실 정치인이었던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평가가 바뀐 것은 80년대 이전 역사 기술이 성공에 초점을 맞춘 반면 이후에는 미국에게도 잘못이 있고 영웅도 결점이 있다는 수정주의로 돌아선 것이 한 이유다. 케네디가 사망할 당시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다섯살 미만이었던 미국인이 전체 인구의 4분의 3이나 된다는 점도 한 요인이다.
갤럽 조사에서 케네디는 88년부터 2000년까지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 1위로 꼽혔으나 최근에는 로널드 레이건, 에이브러햄 링컨, 빌 클린턴에 이어 4위에 밀려났다. 이마저도 43~64세 장년층의 지지율 덕분이다.
그렇다면 케네디는 위대한 대통령일까. NYT 편집장 질 에이브럼슨은 "그는 거의 설명이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모호한 말로 이 질문에 답했다. WP의 칼럼니스트 로버트 사무엘슨은 "케네디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 어딘가에 놓여 있다"고 했다. 미국인에게 케네디 재임 기간은 아더왕이 통치한 캐멀롯에 비유되는 정의와 행복이 넘치는 동경의 시대였다. 하지만 케네디가 업적보다 과장된 수사로 포장된 결점 많은 지도자인 것으로 재평가되면서 그는 보통사람으로, 그의 인기는 이미지로 남게 됐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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