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하이옌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가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에 가깝다는 주장이 기상학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하이옌의 순간최대풍속(시속 379㎞)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해 큰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부실한 건물과 인구 밀집, 지구온난화가 피해 규모를 키웠다는 것이다.
AP통신에 따르면 태풍 전문가인 브라이언 맥놀디 미국 마이애미대 박사는 “하이옌 피해 책임의 75∼80%는 자연보다 인간에 있다”고 주장했다. 맥놀디 박사는 많은 인구가 해안의 부실한 건물에서 집단 거주해 인명 피해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피해가 집중된 타클로반은 인구가 최근 40년간 7만6,000명에서 22만1,000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가옥의 3분의 1은 외벽이 나무로 돼있고 7분의 1은 초가 지붕을 얹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해수면을 상승시키고 태풍의 위력을 강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스티븐 네럼 콜로라도대 교수는 “지난 20년간 필리핀 해수면이 전세계 평균의 3배 가량되는 1.27㎝ 상승했다”고 주장했다. 해수면 상승은 폭풍해일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케리 에마뉴엘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1970년대 사이클론 인명 피해로 고민하던 방글라데시는 튼튼한 대피소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다”며 내구성 좋은 건물 신축과 제대로 된 경고 시스템, 정부의 빠른 대응 등을 인재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하이옌의 피해는 11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개막한 제19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의 분위기도 바꿔놓았다. 예브 사노 UNFCCC 필리핀 수석대표는 개막식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 부족을 질타한 뒤 이번 총회 기간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될 때까지 단식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내 조국이 기후변화 때문에 정신 나간 상황을 겪고 있다”며 “이 미친 짓을 지금 여기 바르샤바에서 멈출 수 있다”고 역설했다.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UNFCCC 사무총장은 개막 연설에서 하이옌이 야기한 사태를 ‘정신이 번쩍 드는 현실’이라고 규정한 뒤 “이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게임이 아니며 승자도 패자도 없고 모두 이기거나 질 뿐”이라고 경고했다. AFP통신은 “하이옌의 피해를 교훈 삼아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 방식을 22일 폐막 때까지 도출해낼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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