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문화/11월 12일] 우리들의 허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11월 12일] 우리들의 허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입력
2013.11.11 18:30
0 0

지난주엔 학과 행사에 고생한 학생들 일곱 명을 데리고 패밀리 뷔페식당을 찾아갔다. 삼겹살집에 데리고 가도 앉은 자리에서 뚝딱 이십인 분 넘는 식사를 해치우는 괴력과 그에 상응하는 계산서를 살포시 내게 내민 전력이 있는 친구들인지라, 그래 이게 더 저렴하고 푸짐하겠구나, 생각해서 찾아간 곳이었다. 일인당 식사비는 이만 원 남짓. 거기에 식사시간 에티켓 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두 시간 안에 모든 식사를 마치고 식당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종업원의 설명을 들었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한 학생이 모두를 앉혀 놓고 뷔페식당 공략법에 대한 짤막한 강의를 시작했다. 우선 차가운 음식에서부터 시작해 따뜻한 음식으로 범위를 넓혀 나갈 것, 샐러드, 회, 육류 순으로 움직일 것, 그리고 초콜릿이나 비스킷 같은 디저트를 먼저 손대는 친구들은 학과의 배신자로 알고 곧바로 응징하겠다, 등등. 아니, 뭐 꼭 그렇게까지 먹어야 하나, 내가 웃으면서 말하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선생님이 쏘는 거니까 본전은 뽑아야죠."

본격적으로 식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나는 학생들을 데리고 뷔페식당을 찾은 것을 후회했다. 삼겹살집이라면 한 자리에 계속 앉아 고기가 익을 때까지 이런저런 얘기도 할 수 있으련만, 뷔페식당에서의 식사란 오직 먹는 것과 먹는 것의 과정, 그것이 전부였다. 한 사람이 테이블로 돌아오면 다른 한 사람이 접시를 들고 나갔고, 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와중에도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제 접시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학생들 옆에서 묵묵히 식사를 했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가 좀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도 이런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이던가, 어떤 세미나에 참석한 뒤 서울 시내 유명 호텔의 뷔페식당으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들어간 적이 있었다. 주최 측에서 마련한 식사였는데, 점심 한 끼 비용으론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비싼 가격대의 식당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평소 내가 볼 수 없었던 음식들이 접시마다 탑처럼 높이 쌓여 있었다(그러니까 게맛살만 알고 있던 내가 그곳에서 난생처음 랍스터를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욕심껏 접시에 많은 음식들을 담아 테이블로 돌아왔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어떤 심한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껴야만 했다. 내 바로 옆 의자에 앉은 한 남자 때문이었다. 그의 접시엔 오직 샌드위치 하나, 그리고 달랑 커피 한 잔이 놓여 있었는데, 그에 비해 내 접시엔 계통 없이, 질서 없이 수북이 음식들이 쌓여 있었다. 그는 내 접시를 힐끔 바라보더니 나이프와 포크로 샌드위치를 썰어먹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괜스레 이런 말을 내게 건넸다. "저는 이 집 샌드위치를 워낙 좋아해서…" 그날 나는 아무 말 없이 접시만 바라보면서 점심식사를 마쳤다. 그러면서 줄곧 이런 생각을 했다. 호텔 뷔페식당에 와도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하구나, 무엇을 먹는가의 문제보다 어떻게 먹는가에 따라서 우리들의 신분이 달라지는구나. 괜한 열패감에 시달리면서 나는 계속 그런 생각들을 했다. 아울러 작가 손창섭이 일본에 체류할 때, 밥을 마음껏 퍼먹을 수 있는 식당에 찾아가 두 공기 세 공기, 식도 근처까지 밥알이 올라오도록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는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먹었다'가 아닌, '밀어 넣었다'는 그의 표현이 왜 더 적확한 비유인가, 나는 그것을 오랫동안 생각하며 앉아 있었다.

학생들과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뷔페식당 앞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 서 있었다. 우리는 그 앞을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다가 한 학생이 친구들에게 말했다. "너무 정신없이 먹어서 뭘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나네." 그 말을 들은 다른 학생이 어깨를 퉁 치며 이렇게 대답했다. "뭘 먹긴. 이만 원을 먹었지." 나는 그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하면서 학생들의 뒤를 따라갔다. 우리가 먹은 것은 음식이 아니라 시간과 돈이었구나. 나는 자꾸 그런 생각만 들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