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다. 글로벌 해운경기침체로 유동성 압박이 지속되면서 시숙(媤叔)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으로부터 주식을 담보로 1,500억원의 급전을 빌려온 데 이어, 이번엔 자신이 임명했던 전문경영인마저 경질하게 됐다. 남편인 고 조수호 회장의 타계 이후 2009년12월 한진해운 경영을 시작한 이래 4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다.
한진해운은 11일 김영민 사장이 경영실적 악화 및 채권 발행 지연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뱅커(씨티은행) 출신으로 2001년 한진해운에 영입돼 관리본부장과 총괄부사장으로 거쳤으며, 2001년 최 회장이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해운시황 악화 속에서 부채비율이 800%를 넘어서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4,000억원 규모의 영구채 발행도 진척이 없자, 결국 퇴진하게 됐다. 형식은 자진사의이지만, 내용적으론 경질이란 게 업계 시각이다. 일각에선 한진그룹쪽과 불화설도 나오고 있다.
한진해운은 공정거래법상 한진그룹에 속해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최 회장이 이끄는 '그룹 내 소그룹' 형태로 독립경영을 해왔다. 하지만 최 회장은 지주회사(한진해운홀딩스) 전환과 함께 내용상 독립경영을 넘어 법적으로도 완전한 계열분리를 요구해왔지만, 한진그룹측은 이에 관한 명확한 방향이나 일정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양측은 보이지 않는 갈등과 앙금이 상존해있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이번 유동성 위기로 최 회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영업적자 상태에서 올해 갚아야 할 기업어음(CP)이 1,200억원, 내년 만기가 돌아오는 공모사채도 3,900억원이나 될 만큼 부채상환압박이 크다. 다급해진 최 회장은 조 회장 측에 한진해운 주식 1,921만주를 담보로 1,500억원을 급히 빌려왔지만, 만약 이 돈을 갚지 못하면 주식소유권이 넘어가기 때문에 최 회장의 지배력은 더 약화될 수 밖에 없다.
물론 대한항공이 미상환시 주식을 가져갈 지는 미지수다. 대한항공측은 "자금대여와 지배구조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며 "독립경영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완전한 분가'를 꿈꿨던 최 회장으로선, 독립은커녕 오히려 독립과 멀어지는 쪽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한진그룹측에서 독립경영 약속을 철회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지만 어쨌든 키는 점점 더 한진그룹쪽이 쥐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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