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코리아 게이트'와 10ㆍ26 사건, 12ㆍ12 쿠데타, 5ㆍ18 민주화운동 등 현대사의 격동기 속에서 대외관계를 원만하게 처리한 것으로 평가 받는 박동진 전 외무부 장관이 11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고인은 75년 12월부터 80년 9월까지 4년 9개월간 외교수장을 맡은 역대 최장수 외교장관이기도 하다. 고인은 76년 중앙정보부가 로비스트 박동선을 통해 미국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준 것으로 시작된 코리아 게이트가 불거지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설득해 박씨를 미국으로 보내 갈등을 봉합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 전 대통령 암살에 이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의 득세로 이어지는 불안정한 정치상황에서 미국과의 인식 차를 좁히고 한미 양국이 전통적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고인은 영국의 의회정치에도 관심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지인은 "박 전 장관은 우리 정치가 왜 항상 싸우는지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영국 등 선진국 의회정치의 모범사례를 벤치마킹하려 애썼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대구 출신으로 대구고등보통학교와 일본 주오대를 졸업하고 51년 외무부에 들어와 의전국장, 주영국 참사관, 외무부 차관, 주월남대사, 주브라질대사, 주유엔대사 등을 역임하고 장관직을 마친 뒤 11, 12대 국회의원과 국토통일원 장관을 지냈다. 그 사이 11대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이던 88년 주미대사로 부임해 의원직을 사퇴하고 91년까지 주미대사를 맡기도 했다. 96년부터는 한국외교협회장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현민(玄民) 유진오 선생의 딸인 유충숙 여사와 1남3녀가 있다. 고인의 장례는 14일 외교부장(葬)으로 치러질 예정이며 장지는 서울 국립현중원이 검토되고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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