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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김종길 영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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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김종길 영종회 회장

입력
2013.11.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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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경북 안동 문화예술의 전당에서는 '불천위(不遷位), 만리를 가는 사람의 향기'라는 주제로 종가포럼이 열렸다. 유교에서는 4대에 한해 제사를 올리지만, 큰 공적이 있는 인물은 신위를 옮기지 않고 계속 제사를 드리는데 이를 불천위라 한다. 이 종가포럼은 학봉 김성일(1538∼1593) 선생의 15대 종손인 김종길(73) 영종회(嶺宗會) 회장이 있어서 가능했다.

김 회장은 종손들 사이에서 개혁적인 인물로 통한다. '종손은 나서지 않는다'는 불문률을 깨고 지난해 영남지역 종손 모임인 영종회를 창립한데 이어 종가문화의 일대 혁신도 예고해둔 상태다. "종가문화도 이제 바뀔 때가 됐습니다. '의어금이 불원어고'(宜於今而 不遠於古), 지금 실정에 맞도록 하지만 옛 법도에서 멀어져도 안된다는 말입니다. 기본적인 예의나 전통에서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대사회의 실정에 맞게 개선하자는 것입니다."

지난해 3월 영종회는 탄생했다. 김 회장이 평소 알고 지내던 종손들에게 말을 슬쩍 꺼냈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운을 뗀 지 석달 만에 영남지역 불천위종가 120곳 중 113곳이 가입했다. 수십년 동안 삼보컴퓨터와 두루넷 등 굴지기업의 최고경영자를 지낸 추진력과 박약회 등 유림단체 수석부회장 경험 등을 모두 쏟아부은 결과였다.

영종회 창립은 필연이었다. 종가문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부나 지자체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종손이 나서서 이런 저런 건의를 하면 도무지 체통이 서지 않는다. 불천위 제사의 간소화 등 시대에 맞는 종가문화를 재정립하는 일도 시급하지만, 이 역시 종손이 언급하기는 힘들다. 종손은 제사 등 집안의 대소사에 참견하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종손모임이 당초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한 것도 이런 탓이다.

창립 이후 모임의 화두는 종가문화 재정립이었다. 개혁 1순위는 봉제사, 특히 불천위 제사를 개선하자는 의견이 대세였다. 불천위 제사를 저녁시간대로 옮긴 종가는 40여곳이고, 새벽시간을 고집하는 곳은 53곳이나 됐다. 온계종택의 이목 종손도 "불천위 제사의 시간대를 저녁으로 옮기고 간소화하자"고 말했다. 새벽에 제사를 모셔왔던 종손 대부분이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김 회장 부인인 이점숙(74ㆍ퇴계 16세손 이근필 선생 동생) 여사도 역시 "종부에게 가장 힘든 일은 불천위 제사를 새벽에 지내는 것"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새벽 1시쯤에 불천위 제사를 지내고 수많은 제관의 음복, 설거지 등을 하려면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기 때문이다.

"제사 때문에 이민 간다는 말을 종손들은 실감합니다. 제사를 간소화하자는 논의가 좀 더 빨리 이루어졌다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지내야 할 제사가 고통스럽고 하기 싫은 일이 된다면 조상님들도 과연 좋아하실까요." 제사의 의미와 기본 형식은 지키되 현대사회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다. 김 회장 자신도 이미 부인에게 "3년 안에 학봉의 불천위 제사시간을 저녁 시간대로 바꾸겠다"고 약속한 터다. 뜻밖에 문중 어른들도 흔쾌히 승인해줬다.

"영종회는 무엇보다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의 인간성 회복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도덕과 윤리를 말하기는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종가는 인간성 회복운동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는 소명을 갖고 있습니다."

영종회는 종가문화의 유지와 발전, 재정립을 위해 2세 교육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실제 지난달 12, 13일 이틀 동안 차종손들을 위한 1박2일 행사도 열었다. 한 종손은 외국에 유학 중인 아들까지 행사에 불러들였다. 마지못해 참가했던 젊은 차종손들은 행사 후 자신들의 아내, 차종부들을 위한 행사도 열어달라고 주문할 정도로 호응을 받았다.

종손의 짐은 무겁다. 종손에 대한 기대심리와 제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이다. 선입견을 바꾸고 종손의 자부심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다. 특히 종가의 각종 의례를 간소화하고 종가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일이 과제다.

김종길 회장은 "선비는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이라며 "이런 전통을 이어가는 곳이 종가고, 우리 사회가 인간성과 도덕, 윤리를 회복하는데 종가가 큰 역할을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임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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