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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 못 돕는 '보육원 퇴소 자립정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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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 못 돕는 '보육원 퇴소 자립정착금'

입력
2013.11.1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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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보육원에서 3년 전 퇴소한 A(22)씨는 시설에서 나갈 때 받은 자립정착금 500만원을 3개월도 안 돼 다 날렸다. 돈은 유흥비로 대부분 썼다. 고시원에 살면서 술 먹고, 옷 사고, 여자친구 선물을 하고 나니 돈은 금세 바닥이 났다. A씨는 "어린 나이에 돈을 쓸 줄 몰라 필요한 데 쓰지 않고 노는 용도로 탕진했다. 후회된다"고 말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만 18세가 돼서 보육원에서 퇴소하는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현금을 지원하는 자립정착금이 자립을 돕지 못한 채 낭비되고 있다. 주거지를 확보하는 용도로 쓰기엔 액수가 적고, 다른 데에 흐지부지 쓰기 쉬운 현금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자립을 돕도록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간 700~800명의 시설 퇴소자에게 주어지는 자립정착금의 가장 큰 문제는 어린 나이에 계획적으로 쓰기 힘든 목돈을 현금으로 준다는 점이다. 서울의 한 보육원에서 3년 전에 퇴소한 노모(24)씨는 "형들이 자립정착금으로 술 먹고, 친구들끼리 돈 빌려주고 하면서 흥청망청 써버리는 것을 많이 봤다"며 "어린 애들한테 500만원을 돈으로 주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김홍기 경북기독보육원장은 "자립정착금으로 오토바이를 사거나 여자친구 핸드백을 사주는 아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며 "시설에서 나간 아이들이 해방감에 자율적으로 돈 관리를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자립정착금으로 자립에 가장 필요한 집을 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자체에 따라 300만~500만원을 지원하는데 대도시에선 월세 원룸조차 구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정부가 시설 퇴소자를 대상으로 전세 자금이나 자립생활관을 지원하고는 있지만 조건이 까다롭고 또 다른 시설이라는 이유로 입주를 꺼리는 이들이 많다. 보건복지부의 2011년 시설퇴소아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전세 주택 자금을 이용한 집이나 자립생활관에서 사는 퇴소자는 19.1%에 불과했다.

아동복지시설 외 가정위탁·공동생활가정(그룹홈) 아동들에게 자립정착금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아름다운 재단의 성혜정 간사는 "시설퇴소아동 중 월 소득이 100만원 이하인 비율이 22.5%"라며 "이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 감당할 수 없는 생활비, 불안정한 고용으로 인해 '요보호아동'에서 '요보호성인'으로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립정착금의 지원 방식을 현금이 아닌 현물 서비스로 바꾸고, 정착할 때까지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장은미 서울장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거비, 교육비 등으로 나눠 바우처 형식으로 자립정착금을 지원해 필요한 용도로만 쓸 수 있게 하고 액수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욱 아동자립지원단 과장은 "시설 외 가정위탁·공동생활가정 아동들까지 수혜범위를 넓히고 실질적으로 자립에 도움을 주려면 연간 50억~60억원인 자립정착금 예산을 지금의 2배로 늘리거나 미국과 같이 지원 기금을 운영하면서 용도를 직업 교육 등으로 제한해 놓고 퇴소 후 일정기간 동안 지속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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