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모두 정지"의 순간, 시간이 정지하고 바람이 멈추는 깜깜한 순간, 그 순간에 미혹된 존재들이 있다. 조경란의 '밤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이들에게 보내는 안타깝고도 서정적인 위문편지다.
표면적으로 소설 속 편지의 발신인은 '미호'라는 일본여성이고 수신인은 그녀의 시아버지인 '오토상'이다. 하나 실상 이 편지의 발신인은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검은' 세계에 발목이 잡힌 모든 존재들이다. 이 소설은 '짙은 그림자'에 뒤덮인 이들, 형체도 없고 실체도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존재에 붙들리는 이들을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기묘한 종교에 빠진 미호의 아버지, 태어나자마자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져 화단에 버려진 미호의 남편 진교 씨는 밤의 존재들, 짙은 그림자 세계에 사로잡힌 존재들이다.
그러나 어디 그런 존재가 미호의 아버지나 진교 씨뿐이랴. 사실 우리 모두는 조금씩, 모든 나뉜 것들이 나뉠 수 없는 지대에서 몸을 섞는 그런 순간, 즉 '밤을 기다리는 사람'들 아니던가.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사물은 서툴게나마 제 모습을 드러낸다. 조경란의 '밤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어둠 속에서 서툴게 자기를 드러내는 존재의 모습을, 그 존재의 의미를 섬세하고 단아한 문장으로 포착한다.
한국일보문학상 예심위원 심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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