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2년간 그린피스가 개별 국가나 기업을 상대로 벌여온 '깽판'들은 유쾌하고 통쾌했다. 유전자조작 실험농장에 유기농 씨앗을 뿌리거나, 바다표범 새끼 털에 무독성 페인트를 칠해 모피 사냥꾼을 아연케 했다. 다이옥신 배출 공장의 배수구를 막아버리고, 보존가치 높은 습지를 덮어 활주로를 닦으려는 계획에 맞서 한 평 땅을 사서 '알 박기'를 감행하기도 했다.
승률은 100%. 대안을 가지고 덤비고, 될 싸움만 벌이고, 이길 때까지 맞서왔기 때문이다. 삼성 LG 소니 노키아 모토로라가 자사 제품에서 독성 화학 물질을 단계적으로 제거하겠다고 물러섰고, 맥도날드가 아마존 열대우림을 파괴해 키운 콩을 먹고 자란 닭은 안 쓰겠다고 약속했다. 러시아는 방사성 폐기물 해양폐기를 중단했고, 뉴질랜드는 화력발전소 신규 건설을 포기했다.
그린피스의 저 무모해 보일 정도의 배짱과 추진력은 창의성과 전문성, 보다 근본적으로는 절대적으로 독립적이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재정 덕에 가능한 일이다.
1971년 암치카 핵반대 원정캠페인으로 출범한 그린피스는 당시 비용을 콘서트로 모금한 이래 단 한 푼의 기업 돈과 정부 보조금을 안 받았다. 이제 보편화한 거리 모금도 그린피스가 처음 시도했다. '직접대화(Direct Dialogue)'라고 부르는 거리모금으로 그린피스 활동가는 시민과 대화하며 후원회원을 모은다. 10월 말 현재 전세계 그린피스 회원은 약 300만명. 그린피스 인터내셔널 본부가 있는 네덜란드는 2010년 기준 전체 인구의 약 2.8%, 스위스는 약 2.2%가 회원이다. 40여 개 진출국 인구 평균 0.6%~1%가 후원 회원이다.
한국 사무소는 내년부터 대중 모금을 시작한다. 이선민 모금개발 담당은 "한국은 아동원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환경 기부는 비중이 낮다. 그래서 오히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목표치를 밝힐 순 없지만 굉장히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 공격적으로 모금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든든한 후원 덕에 그린피스의 활동과 성과가 이어질 수 있었다면, 그렇게 쌓아온 신뢰 덕에 후원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환경 문제 전반을 건드리기보다 5년, 3년, 1년 계획으로 핵심 캠페인을 정하고, 대안을 담은 과학적 연구보고서를 쥔 뒤에야 싸움을 시작하고, 일단 벌인 싸움은 이길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그린피스의 싸움의 방법. 국내 NGO활동 경력이 있는 이현숙 기후 에너지팀 캠페이너는 "많은 국내 NGO들이 '일단 부딪쳐보자'는 식이라면 그린피스는 힘을 모으는 법을 안다. 기관이 움직이고 제도가 바뀔 버튼을 전략적으로 찾아내는 것이 그린피스의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그린피스 활동가는 대부분 환경 언론 홍보 등 다양한 분야의 경력자들로 충원된다. 입사한 뒤에도 담당 분야의 직무 교육이 이어진다. '비폭력 직접행동(NVDA)' 트레이닝은 그린피스 모든 스탭의 필수 이수교육. 퐁찌아장(馮家強ㆍ34) 동아시아지부 디렉터는 "NVDA 트레이닝은 폭력적으로 저지하는 경찰 등을 맞서 다치지 않고 비폭력 불복종 활동을 펼치는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 재난 상황 긴급 대응 트레이닝, 방사능 측정 트레이닝과 같은 기술적 분야부터 모금 트레이닝, 언론에 캠페인을 홍보할 때를 위한 대변인 트레이닝에 이르기까지 직무에 맞는 프로그램이 각 분야 전문가들을 초빙해 수시로 진행된다. 매년 한 차례 세계 지역사무소들이 모여 각국의 활동 노하우를 공유하는데, 올해는 12월 18일 한국에서 열린다.
그린피스는 활동가의 경력과 역할 등에 걸맞은 보상을 제공하는 것으로도 국내 대다수 로컬 NGO와 차별화한다. 'NGO는 배고픈 곳'이라는 암묵적인 전제에 그린피스는 동의하지 않는다. 국내 환경단체에서 일하다 그린피스로 자리를 옮긴 박지현 해양 캠페이너는 "생업에 바쁜 시민들을 대신해 정부와 기업을 감시하는 비정부 기구는 민주주의 사권분립의 한 축으로 꼽힐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활동가의 처우도 지금과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면 후원자가 늘어야 하는데, 또 그러자면 우리가 활동을 잘 해야 하고…, 그런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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