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누군가를 우연히 세 번 만난다면 기연(奇緣)을 따져보아야 한다. 다른 복장 다른 걸음걸이 다른 미소를 보일 땐 더더욱 그렇다. 나는 터키 시인 나짐 히크메트와 세 번 마주 쳤다. 기억할만한 지나침이었다.
처음 히크메트의 시를 발견한 것은 2005년 출간된 류시화 시인의 잠언시 모음집 에서였다. 수록된 시 '진정한 여행'은 첫 부분부터 읽는 이의 가슴을 흔들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시를 작업실 벽에 붙여두고 소리 내어 읽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뛰어난 힐링 포엠(Healing Poem)을 쓰는 시인이구나 여겼다.
다시 히크메트의 시를 만난 것은 2008년 번역된 존 버거의 산문집 에서였다. '나는 내 사랑을 나직이 말할 테요'라는 장에서 존 버거는 히크메트에게 보내는 편지와 에세이를 실었다. 징검다리처럼 히크메트의 시가 군데군데 놓였다. 존 버거는 정치범으로 도합 17년을 터키의 차디찬 감옥에서 보낸 히크메트의 시가 지닌 광활한 공간성에 주목한다.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도 없이, 그의 시는 대양을 건너고 산맥을 가로질렀다. 히크메트는 노래했다. '내가 만일 창이라면, 커튼이 달려 있지 않은 드넓은 창이라면 / 온 도시 전체를 내 방으로 불러들일 테요 / 내가 만일 하나의 단어라면 / 아름다움을 공정함을 진실함을 요청할 테요' 존 버거에게 히크메트는 학살의 세기에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한 저항시인이었다.
마지막으로 히크메트의 시들을 축복처럼 왕창 읽은 것은 2012년 정선태 교수가 엮은 에서였다. 푸시킨, 레르몬토프 등 러시아 시인 틈에 히크메트가 있었다. 백석은 1956년 평양에서 을 3인 공역으로 펴냈다. 이 중에서 37편이 백석의 손을 거쳤다.
내가 백석의 번역 작품을 읽기 시작한 것은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부터였다. 아무르 호랑이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잡지 1942년 2월호에서 이 번역소설을 발견한 것이다. 울창한 만주 밀림의 면면을 맛깔스런 우리말로 옮긴 솜씨가 놀라웠다. 자야 여사와의 사랑을 접은 백석은 압록강을 넘어 만주를 떠돌다가 해방 후에야 귀국했다. 그의 발길이 닿았던 만주 밀림엔 지금도 야생 호랑이가 서식하고 있다. 나라도 잃고 사랑도 실패한 시인이 타국의 밀림에서 포효를 들으며 식인호랑이에 관한 소설을 번역하는 쓸쓸한 풍광이 오랫동안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영어와 일어에 능통했던 백석은 러시아어에도 조예가 깊었다. 솔로호프의 장편소설 을 번역한 뒤, 1950년대에는 집중적으로 러시아 시 번역에 매달렸다. 터키 시인 나짐 히크메트가 어떻게 백석의 눈에 띄었을까. 나짐 히크메트는 1950년 출옥한 뒤 이듬해 소련으로 망명하였다. 러시아어로 번역 출판된 히크메트 선집을 백석이 읽은 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옥중서한'으로 묶인 스물일곱 편의 시는 히크메트의 의지와 백석의 서정이 만나 눈부시다. 옥중시일 뿐만 아니라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낙관적인 연시(戀詩) 모음이다. 제23신을 읽는다. '내게는 / 행복으로 끝나는 책들을 보내달라 / 날개 부러진 비행기가 / 평안히 비행장에 돌아오도록, / 수술실을 나오는 외과의의 얼굴이 / 기쁨으로 하여 빛나도록, / 멀었던 어린애의 눈이 반짝 열리도록,'
히크메트의 시들은 어떻게 내게로 왔는가. 영국과 러시아와 북한을 거쳐, 잠언시에서 옥중시와 연시를 돌아, 번역에 번역을 더하여, 2013년 대한민국의 내게로 왔다. 좋은 시는 시공을 초월하여 독자의 영혼을 밝힌다고 믿은 지구마을 역자들의 수고가 귀하다. 히크메트와의 네 번째 조우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늦가을 저녁이다.
김탁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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