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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제7회 임종국상 수상한 '과거사 전문' 장완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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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제7회 임종국상 수상한 '과거사 전문' 장완익 변호사

입력
2013.11.0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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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법부가 판단할 일인가한국서 끌고 갈 때 부터가 불법관할 규정상 한국서 재판 가능日판결은 '식민지배=합법' 전제●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 여전히 많아日은 회피하고… 시효 지나고…군속·군인출신들, 訴제기도 못해국가가 나서 빠짐없이 도움줘야● 친일재산범위 확대의 의미대법원서 판결 확정되면친일행위 단죄 더 확실해질 것하지만 실행은 결국 정부의 몫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하면서 '과거사 전문 변호사'라는 별명까지 붙은 장완익(50·법무법인 해마루 대표)변호사가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정한 제7회 임종국상 사회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일본의 최고재판소에서까지 원고 패소로 끝난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2012년 신일철주금이 됨)의 강제징용 배상문제를 한국 사법부에 제기, 1심과 2심에서는 패소했으나 작년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이끌어낸 주인공. 이 사건은 올 7월에 부산고법과 서울고법에서 나란히 승소한 후 현재 대법원의 최종 확정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건의 승소에 힘입어 비슷한 재판이 네 건 더 진행중이기도 하다. 그 중 하나인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소송은 1일 광주지법에서 역시 미쓰비시에게 6억8,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승소판결이 내려졌다.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확정판결에 일본 기업이 거부할 경우 국내에 있는 일본 기업의 재산에 대해 강제징수를 할 수 있다.

5일에는 청주지법 항소심재판부가 친일인사 민영은의 친손들이 청주시를 상대로 할아버지의 땅을 돌려달라고 낸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결정을 내리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 개전때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전까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라고 못 박은 것이 화제가 됐다. 종전까지는 일제강점 기간 중이라도 친일행위로 취득한 재산이 입증되는 것만을 친일의 대가로 국가에 귀속시켰다. 일제강점과 친일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인식이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는 반가운 조짐이다. 장 변호사는 2006~2010년 친일반민족재산조사위원회 사무처장으로 친일 재산을 찾아 국가귀속시키는 일을 지휘했다. 인혁당 피해자들의 소송과 수지 김 사건의 승소를 이끌어냈고 지금은 전두환 시절 보안사 간첩 조작사건과 '여순반란사건'의 여수 민간인 학살 피해자 소송을 맡고 있으니 '국가폭력 전문 변호사'라고도 불러야 할 그를 만났다.

과거사 문제만 하고 있습니까?

"이것 저것 다 하는데 과거사 하는 변호사가 적다 보니 그렇게 보이는 모양입니다.(웃음)"

한국 사법부의 잇따른 배상판결에 일본의 경제단체모임인 경단련이 8일 성명을 내고 배상에 응할 수 없다, 이런 식이면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으름장까지 놓고 있어요.

"혹시 무슨 제안이라도 있을까 기대했는데 역시 일본 정부와 마찬가지로 1965년(한일청구권 협정) 이후만 보면서 해방전의 잘못에는 눈을 감고 협박과 엄살을 하고 있네요. 그래도 이 문제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했다는 건 다행입니다. 한국정부에서도 2005년 이후 진전된 것이 없는데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기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피해자와 유족의 뜻을 살리는 강제동원피해자재단을 설립하는 데 앞장 섰으면 좋겠습니다. 청구권으로 수혜를 입은 포스코 한국도로공사 외환은행 등의 기업과 유수한 대기업까지 참여시켜 재단을 만든 후 일본 정부와 일본기업까지 참여를 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미쓰비시중공업 재판을 시작할 때만 해도 원고 6분이 모두 살아계셨는데 20년 가까이 재판을 하는 사이에 다 돌아가셨습니다. 피해자분들이 점점 돌아가시는데 재판 결과만 기다린다는 것은 평생 고통을 겪어온 분들에게 가혹한 일입니다. 정부는 이 기회에 한일청구권협정의 개정 문제도 검토해야 합니다."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이 나서는 게 아니라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이 나서서 재단을 만든다고요?

"오죽하면 그러겠습니까? 독일은 1999년 통일 이후 나치 시절 강제동원한 외국인으로부터 비슷한 소송을 많이 당했습니다. 재판 자체는 시효 문제로 독일이 승소했지만 유대인들이 미국 정부에 압력을 가하면서 미국 정부와 독일 정부가 합의한 끝에 '기억 책임 미래 재단'이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피해자 보상도 하고 치유와 교육프로그램도 하고요. 이건 가해자가 나서서 재단을 만든 것이지만 일본은 전혀 그럴 기미를 안 보이고 있으니까 우리라도 먼저 나서자는 겁니다. 한국 정부에서 그동안 방치한 책임도 있으니까요."

어떻게 과거사를 주로 하시게 됐습니까?

"1994년에 가까이 지내던 배금자 변호사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저한테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도와주는 변호사 역할을 부탁했어요. 그래서 유학에서 돌아올 때까지 하겠다고 했는데 엮인 거지요.(웃음) 사실 그때는 한국 법체계에서 이 분들을 위해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봤거든요. 실제 소송이 일본에서 일어났고 일본에서 변호사들과 사회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서 한국 상황을 알려드리는 정도로만 했어요. 97년에 일본 단체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초청하면서 강제징용 군인 군속 피해자분들까지 다 함께 초청을 했어요. 당시만 해도 한국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가 주로 부각되고 그 분들에 대한 지원법은 있었는데 다른 분들에게는 관심이 거의 없었거든요. 98년에는 아시아 지역의 민간인 학살 지역을 찾아가면서 열리는 동아시아평화인권대회가 제주도에서 열려서 4.3사건에 대한 피해자 증언을 듣게 됐어요. 대학시절에 저도 '해방전후사의 인식'같은 책을 읽었지만 직접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는 것은 굉장히 다르더라고요. 그러다가 99년말에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1심 소송이 패했어요. 일본 변호사들이 '10년간 소송을 해봐도 안되니 한국쪽에서 한국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게 어떻겠는가' 제안을 했어요. 그래서 2000년 5월에 미쓰비시중공업 한국지사가 있는 부산지법에 소송을 제기했지요."

일본 기업이 잘못한 것인데 그 판단을 한국의 사법부가 내릴 수 있다는 게 국제법상 맞는 건가요?

"관할 규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본 기업과 일본 국가가 힘을 합쳐가지고 피해자를 끌고 가서 강제노동 시킨 거니까 불법행위의 책임이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에 공동으로 있다고 해서 소송을 제기한 것인데요. 불법행위가 어디서부터 출발을 했냐면 한국에서 끌고 간 거지요. 처음에는 기업이 모집을 했고 그 다음에는 관 주도로 데리고 갔고 그 다음에는 아예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모집이든 관 알선이든 징용이든 다 강제성이 있다고 봅니다. 제대로 근로조건을 안 알리고 데리고 가서 강제노동을 시킨 거다, 그냥 한 거라면 싫다 그러면 돌아올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된 거죠. 불법행위가 일본에서 이뤄졌지만 한국에서 시작돼서 일본까지 간 거니까 재판은 한국에서도 할 수 있다고 본 거지요."

한국에서 소송할 때는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에 한국정부까지 포함이 되는 건가요?

"일본기업만을 상대로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본정부도 대상이 됐지만 한국 법원에서 일본 정부가 피고가 됐다 그러면 '우리는 주권국가이기 때문에 한국 사법부의 판단을 따르지 않겠다' 합니다. 이걸 주권면제라고 합니다. 그걸 주장할 가능성이 많아서 뺐습니다."

일본에서 소송한 것을 다시 한국에서 재판하는 문제는 없습니까?

"외국에서 판결이 난 사건은 그 판결이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성격이 아니면 그대로 승인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1심 패소후 시작했지만 결국 일본 최고재판소까지 가서 패소했고요. 신일본제철 소송은 2003년에 최고재판소까지 가서 패소한 판결을 2005년부터 한국에서 소송을 시작하니까 일본 판결을 승인하라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결국 한국에서 신일본제철에 대해 1심 2심 판결에서 일본 판결을 승인했습니다. 미쓰비시 역시 2009년에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이 나면서 일본 판결을 승인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대법원이 일본 판결을 승인하면 안 된다고 파기환송을 해서 뒤집어진 것입니다."

왜요?

"일본 판결은 식민지 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것을 토대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제 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과 충돌되므로 승인할 수는 없다고 본 거지요. 대법원은 파기환송할 때 승인 문제만 지적한 것이 아니라 다른 문제에도 다 답을 내려줬습니다. 첫째 일본은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청구권도 소멸했다고 하는데 청구권 협정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의 채권 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 배상 문제는 따지지 않았다. 둘째 과거의 그 회사들과는 별개의 회사라고 하는데 신일본제철이나 미쓰비시중공업이 과거의 회사가 해산하고 몇 개로 나뉘어졌다가 다시 합병을 했다, 지금도 '기업100년사'를 말하고 인적 물적 자원도 그대로 넘어왔으니 같은 회사가 맞다. 셋째 이 재판을 하면서 한일청구권 협상의 내용이 2005년에야 제대로 공개가 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야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으므로 시효가 끝난 게 아니다, 이런 판단을 다시 고등법원에 미루면 피해자들이 너무 고통을 겪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대법원 파기환송의 뜻을 잘 이어받아서 고등법원이 올해 승소판결한 것인데 일본의 문제로 소송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대법원 확정 판결은 언제나 납니까?

"일본 기업이 대법원에 상고는 해놓고서 변호사를 지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고이유서를 내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2심 변호사가 그냥 맡을 것 같은데 시간을 끄는 거지요."

그렇게 시간?끄니까 이 문제를 소송이 아니라 재단 설립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군요.

"지금 하고 있는 여섯 건의 재판 피해자가 54명 밖에 안됩니다. 우리가 또 소송을 하더라도 100명을 더하겠습니까? 1,000명을 더하겠습니까? 소송이라는 게 최종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겠는가. 소송이라는 건 소를 제기한 사람만 혜택을 보는 건데 그조차도 거의 20년 정도를 소송을 하고 계신 겁니다. 이 분들은 노무자니까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했지만 군인이나 군속으로 가신 분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해야 하는데 소 제기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2000년대 중반부터 소송과 상관없이 피해자 모든 분을 찾아서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일제시대 피해자 관련해서는 강제동원희생자지원법이 있습니다만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주로 외국에서 돌아가신 피해자에 대해서 2,000 만원 정도를 위로금이라는 명목으로 드리고 살아오시는 분은 아무 것도 안하고 있지요. 근본적인 책임은 일본에 있는데 일본 정부와 기업이 워낙 책임을 회피하니까 피해국가지만 우리가 먼저 만들어보자는 뜻이지요. 민간인 학살도 소송하다 보면 상속인도 다 못 찾습니다. 50~60년 지났으니까 떨어져 살다보면 연락되는 사람이 적습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서 피해와 관련된 결정을 하며 3년 내 소송을 해야 하는데 결정 났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시효가 지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건 정부에서 좀 찾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사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진화위법)을 만들 때 배상을 하는 법을 동시에 만들었어야 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시효도 없애고 상속인도 국가가 빠짐없이 찾아서 배상을 했어야 하는 건데 못하고 있습니다. 18대 때도 법안을 제안했고 19대에도 법안이 올라가 있습니다. 진화위법을 개정해서 2010년으로 끝난 진화위 활동을 다시 해서 조사도 하고 배상법도 따로 만들자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진화위도 그렇고 (장 변호사가 사무처장이던) 친일반민족재산조사위원회도 그렇고 2010년에 활동을 종료하면서 각 부처에 작업을 승계하라고 자료를 내밀었는데 그조차 승계를 받지 않아요. 지금 있는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이 역할을 하면 또 그대로 할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는데도 말이에요."

혹시 민간기구가 그런 역할을 하면 안될까요?

"민간기구는 연구는 할 수 있어도 활동에 한계가 있지요. 국가기관은 호적등본이나 주민등록등본도 떼볼 수 있고 등기부등본도 증빙의 목적으로 조회를 해볼 수 있어서 친일재산을 찾는데 훨씬 유용합니다. 당시 친일반민족재산조사위원회에서 친일재산이라고 결정을 하면 등기 자체가 국가소유로 넘어옵니다. 후손들이 이 결정이 잘못됐다고 소송을 걸어서 결정이 취소되면 돌려주는 경우는 있어도 국가 귀속이 쉽고 빠르게 됩니다. 당시 친일재산만 하기로 했지만 일본 명의의 재산도 찾아서 국가귀속을 하라는 규정이 있어서 일본인 명의의 땅도 많이 찾았습니다. 미 군정과 일본 정부가 맺은 샌프란시스코 협약에 따라 일본이 한국에 강점한 재산은 모두 미군정 소유가 되었다가 한국 정부 소유로 인수 인계되도록 되어 있거든요. 찾는 즉시 한국의 국유재산이 됩니다. 이번 국감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땅이 아직도 국유지가 안되어 있다는 지적이 나왔던 모양인데 저희가 동양척식주식회사 명의로 된 것은 다 찾아서 기획재정부에 넘겼어요. 일본인 개인 재산은 일일이 지역 경제단체 친목모임 명부를 찾아서 한국에 온 시기, 한국을 떠난 시기까지 확인하면서 찾아줬거든요. 친일재산은 저희 결정과 동시에 국가귀속이 되지만 일본인 명의 재산은 기획재정부가 등기를 해야 국유재산이 되거든요. 명단과 지목을 넘기면서 기획재정부 관계자에게 등기를 하라고 하고 앞으로 더 찾는 방법까지 일러주겠다고 했는데 그 명단조차 다 국유 재산으로 제대로 작업을 안 한 겁니다. 저희가 목록을 건네니까 그냥 국가기록원에 넘기라 그래서 국가기록원으로 넘기고 나왔어요. 그 후에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국유재산을 찾는 일을 맡은 모양인데 저희가 준 자료도 다 안하고 일년에 일부만 하고는 말아요."

민영은씨 후손들에 대한 판결로 친일재산의 범위가 늘어나기까지 했는데 이번 정부는 또그 역할을 잘 할까요?

"친일재산조사위원회에서는 친일의 대가를 명확히 입증하지 않고 친일한 사람들의 재산을 전부 국가 귀속시킬 경우 위헌 소지가 생기겠다고 해서 친일행위가 확실히 드러난 것에 국한해서 굉장히 보수적으로 친일재산을 규정하고 활동했습니다. 저 판결이 대법원에서까지 확정된다면 친일재산의 범위가 좀더 넓어지고 친일행위에 대한 단죄는 더 확실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보지요. 실제 실행은 정부에서 해야 하는데 걱정이 많습니다. 제일 중요한 게 교육인데 교학사 교과서 문제만 봐도 박근혜 정부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일제강점기는 물론 5.18에 대해서도 제대로 안 가르치니까 아이들이 일베에서 떠들듯이 영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거 아닙니까. 일본도 교육을 안 시키고 교과서를 왜곡하니까 큰 문제라 여겼는데 우리까지 이러니까 문제가 정말 심각합니다."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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