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황제의 궁궐 자금성. 황제를 상징하는 색깔 '자(紫)'와 일반인의 접근을 막는다는 '금(禁)'이 합쳐진 말이다. 자금성에 들어가려면 톈안먼에서 시작해 일직선으로 뻗은 네 개의 회랑을 거쳐야 한다. 9,999개의 방이 있는 자금성은 구중궁궐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격리의 공간이다.
은 자금성 안에서 25년 동안 지냈던 청나라 마지막 태감(太監ㆍ환관의 우두머리) 신슈밍을 비롯한 10여 명의 환관이 구술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5,0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비인간적인 환관 제도에 희생당했던 이들이 겪고 지켜본 것은 거대 서사가 포착할 수 없는 소소하고 비밀스러우며 잔인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모든 것을 누리는 황제의 삶은 만인의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허기진 황제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청 황제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아닌 환관과 유모들의 손에 길러졌는데, 이들은 어의의 말을 철칙으로 삼아 한 줌의 융통성도 발휘하지 않고 극도로 경직된 방법으로 황제를 키웠다. 혹시 어린 주인이 탈 날까 봐 '음식을 절제해 먹여야 한다', '외출을 삼가야 한다'는 등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 "어린 황제를 마치 사형수를 지키듯 엄격히 관리해 황제가 배가 고파 계속 우는 경우가 있었다. … 광서제가 열 살쯤이었을 무렵에는 태감 방에 올 때마다 먼저 먹을 것을 찾아 들고 도망쳤다. 태감이 쫓아와 무릎을 꿇고 애걸했지만 들고 나온 찐빵은 이미 절반이나 황제의 뱃속으로 들어간 뒤였다."(105~106쪽) 장성한 황제의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황제의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만 300명에 이르는 어선방에서 내놓은 48가지 음식이 모두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맛이었기 때문이다."(105쪽)
황제를 떠받들기 위해 존재하는 환관은 궁녀와 더불어 궁궐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황궁의 주인들은 작은 일로도 환관들에게 엄한 벌을 내리기 일쑤였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잘못 걸리면 끔찍한 화풀이 대상이 되곤 했다. 그 가운데 가장 잔인했던 일은 2대 황제를 섭정하며 국정을 농락했던 권력자 서태후(1835~1908)가 나이 든 환관에게 그의 대소변을 강제로 먹여 죽음에 이르게 것이다.
호사의 극치를 누렸던 서태후의 사생활도 공개한다. "서태후는 젖을 잘 내는 두 여성을 골라 이들의 젖을 먹었다. 이들이 몸에 꼭 붙는 진홍색 상의를 입고 젖꼭지만 드러낸 채 침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침상에 누운 채로 젖을 받아 마셨다. 이들 여성은 서태후의 건강을 위해 젖 내는 기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들은 좋은 젖을 낼 수 있도록 산해진미를 먹었지만, 젖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진 소금이나 간장이 빠진 음식만 먹어야 했다."(419쪽)
청나라 붕괴와 관련된 뒷얘기도 시선을 끈다. 마지막 황제 푸이(선통제)를 대신해 섭정한 융유태후가 청나라를 위안스카이 일파에게 내주고 받은 대가는 고작 매년 400만 위안이었다. 융유태후가 거기에 만족했다는 사실은 청나라가 얼마나 허망하게 붕괴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책은 1,000명에 달했던 청나라 환관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생생하게 그리고있어 청나라 역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술술 읽을 수 있다. 전기나 백과사전, 역사서 등에서 평면적이고 단편적으로만 소개되는 인물과 사건에 대해 그 업적은 물론 내막과 심리, 행동거지, 성격, 의도를 실제적이고 입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이자 가치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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