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정부의 출범은 10년 만의 중국 권력 교체라는 단순한 설명으로 그칠 수 없다. 중국 권력 지형의 변천이라는 큰 흐름에서 볼 때 마오쩌둥의 혁명세대, 덩샤오핑의 개혁세대에 이어 포스트 개혁세대 정치 엘리트의 등장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후진타오 정부까지는 이미 덩샤오핑 집권 시대에서 구상된 것이고 정책 기조 역시 덩샤오핑 시대 정신을 이어 받아 고도 성장을 통해 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반면에 시진핑 정부는 이제 더 이상 '성장신화'만으로는 공산당 체제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새롭고도 복잡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시진핑 정부는 성장 방식의 전환, 정치 개혁, 그리고 G2에 걸맞은 국제적 역할 수행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응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시진핑은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하여 시대적 과제를 돌파할 것인지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시진핑은 총서기 취임 직후인 2012년 12월 초 첫 지방 시찰 지역으로 중국 개혁개방정책의 상징 도시인 선전을 선택했다. 선전은 중국의 첫 번째 경제특구였으며, 20년 전인 1992년에는 덩샤오핑이 톈안먼 사태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이른바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지속적인 개혁개방을 역설했던 곳이기도 하다. 곧바로 시진핑의 '덩샤오핑 따라하기'가 회자되었다.
시진핑이 최근 공산당 간부의 청렴과 부패 척결을 강조하며 정풍운동에 박차를 가하자 중국인들은 다시 마오쩌둥을 떠올리고 있다. 심지어 마오쩌둥의 초상화에 시진핑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 중국 내 온라인상에서 암암리에 퍼지고 있다 한다. 중국인들은 21세기 G2 시대에 집권한 첫 지도자 시진핑을 통해서 마오와 덩이라는 과거의 두 거인을 연상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차이나 3.0' 시대를 고민하는 시진핑에게 마오 시대 30년과 덩 시대 30년이 지니고 있는 역사의 무게가 만만치 않음을 가늠케 한다.
출간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뉴욕타임스 기자 해리슨 솔즈베리(1908~1993)의 이 요즘 들어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시진핑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마오와 덩을 다시 돌아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퓰리처상을 받은 이 책에서 솔즈베리는 마치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함께 중국 현대사의 주요 고비를 넘어온 것처럼 생생하게 현장을 묘사하고 있다. 기자로서 취재한, 중국에서는 쉽게 구하기 힘든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풍부한 상상력을 가미하여 썼다. 덕분에 1949년부터 1989년까지 40년간 파란만장한 중국 현대사의 흐름이 소설을 읽듯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이라는 책 제목은 그 자체로 많은 궁금증을 갖게 한다. 솔즈베리는 왜 혁명을 통해 봉건 왕조 체제를 무너뜨리고 이른바 '신중국'을 건설한 혁명가들을 '새로운 황제들'이라고 부른 것일까? 저자는 책에서 두 지도자가 과거 황제들의 통치 경험을 기록한 을 열독하면서 '황제 따라하기'에 열중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솔즈베리의 눈에 두 혁명가들이 황제처럼 비친 이유를 찾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흥밋거리다.
이 책은 1949년의 톈안먼 광장에서 시작해서 1989년의 톈안먼 광장으로 끝을 맺고 있다. 솔즈베리는 1989년 톈안먼 광장의 비극을 현장에서 경험한 몇 안 되는 미국 기자였으며 실제 이 책은 그 어느 역사 장면보다 톈안먼 광장의 비극을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솔즈베리가 이 책을 출판하는 데 톈안먼 광장에서의 사실상 마지막 중국 경험이 주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이 된다.
이 책의 초판이 발행된 1992년은 한국이 중국과 수교한 해다. 이 책은 국내에 본격적인 중국 붐이 불기 시작한 그 즈음 한국 독자들에게 중국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중 관계가 새로운 미래 20년을 지향하고자 하는 이 시점에 이 책이 다시 등장한 것은 지난 20년간 한국의 중국 이해의 깊이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런 맥락에서 국내 대표적인 중국 전문 기자 출신인 박승준 인천대 초빙교수가 1990년대 이후 시진핑 등장까지의 현장을 이 책에 담아 낸 것은 이 책의 상징성을 배가시키고 있다.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장소에서 활동했던 두 명의 걸출한 중국 전문 기자가 갖고 있던 중국을 바라본 렌즈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적지 않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기자 신분으로 1989년 톈안먼 사태 현장을 지킨 공통점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솔즈베리는 오랜 중국 관찰자로서 톈안먼 사태가 사실상 중국의 마지막 인상으로 남았다면 박 교수는 중국 전문 기자로서 첫 발을 디딜 무렵 이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했다는 점이다. 냉전의 최전선에서 이제 막 죽의 장막을 거둬내며 개방의 길에 들어서는 중국을 지켜봤던 미국 기자의 시각, 그리고 그 미국 기자가 아마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비약적인 고도성장을 이루어내며 명실상부 초강대국의 위상에 근접해가는 중국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한국 기자의 시각을 비교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인식의 저변을 새롭게 확장시켜주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ㆍ중국 정치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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