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독일은 성(性)의 파도에 휩쓸린다. 자유로운 성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낙태와 피임, 불임 등을 상담해주는 성상담소가 성행했다. 자유연애의 확산에 따라 당시 독일에서는 낙태 시술이 연간 100만 건이나 이뤄졌다. 동성애도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동성애자 전용 술집이 베를린에서만 100군데 가량 성업했다. 자유로운 성 풍토에 우파들은 적대감을 드러냈다. 쾌락을 좇는 신여성 등장과 동성애 횡행으로 가족의 전통적 의미와 기능은 붕괴되고 인구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극우파인 나치는 당연히 동성애 등 자유로운 성문화에 단호했다. 1933년 집권한 뒤 동성애자에게 철퇴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나치는 집권기간 동성애에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나치 수뇌부에 동성애자들이 있었고 나치 자체가 남성동맹이라는 정체성을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나치와 동성애 사이에 형성된 긴장을 통해 독일의 동성애 담론과 문화를 살폈다. 문학과지성사ㆍ560쪽ㆍ3만원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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