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1동에 사는 회사원 김모(37)씨는 출근을 위해 매일 지하철역까지 가는 것이 고역이다. 집에서 20분을 걸어 1호선 구일역 인근에 도착한 뒤 왕복 10차선 서부간선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건너야 역 입구에 다다른다. 육교에서 승강장까지 10분 넘게 걸어야 하는 셈이다. 7일 김씨는 "구로1동에는 1만여 가구가 살지만 서울 중심부로 가는 대중교통은 지하철이 유일해 불편해도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광명시 철산동 주민들은 245m 길이의 사성보도교를 건너야 한다. 구로구 고척동 주민들은 고척교(250여m)로 안양천을 건넌 뒤 서부간선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200여m를 걸어야 겨우 지하철역에 도착한다. 이들 지역 주민들은 "노인, 아이들이 걷기에는 너무 멀고 겨울과 여름, 특히 장마철에는 불편이 더 심하다"고 입을 모았다.
1995년 개통해 하루 평균 1만2,000여명이 이용하는 구일역 출구는 구로1동 방향 단 한 개뿐이다. 구일역이 안양천 한 가운데 있지만 서쪽으로는 출구가 없는 탓에 고척동, 철산동 주민들은 안양천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와 전철을 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출구를 더 만들어 달라는 민원이 빗발치지만 자치단체들은 예산이 부족하다며 외면하고 있다. 구로구 관계자는 "도로 포장도 제대로 하기 힘들 정도로 예산(2013년 3,500억여원)이 부족해 출구를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구일역에는 내년 말 2번 출구가 드디어 생긴다. 서울시는 고척동에 건립 중인 돔 야구장 근처에 내년 말 완공을 목표로 2번 출구를 만들기로 했다. 그동안 역을 관리하는 코레일은 "지자체가 부담하라"며, 구로구와 광명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출구 신설의 책임을 서로 떠넘겨 왔지만 야구 관중이 불편을 겪을 것이 불 보듯 뻔해 서울시가 '물주'로 나선 것이다. 그러나 출구가 생겨도 구로1동이나 광명시 주민들은 기존 접근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구일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7호선 청담역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청담역에 가보고 펑펑 울었다'는 주민들의 글이 올라올 정도다. 하루 평균 5만6,000여명이 이용하는 청담역은 출구가 14개나 돼 비(非)환승역 가운데 출구 수가 가장 많다. 강남구청 방면에서 경기고까지 이어진 지하통로는 직선거리가 689m로 국내 지하철역사 중 가장 길다. 2000년 청담역 건설 당시 강남구청이 직접 돈을 들여 통로를 원안보다 강남구청쪽으로 105m, 경기고쪽으로 175m 등 총 280m를 연장하고 출구도 6개 더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강남 주민들이 집 근처에 출구를 내달라고 민원을 넣어 강남구청이 들어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성한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되면서 부유한 지자체와 그렇지 못한 지역의 공공시설물에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면서도 "시나 국가가 지자체간 빈부격차를 적절히 줄여줘야 하는데 한국은 상대적으로 지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