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개입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씨의 변호사 비용을 국정원이 예산으로 대납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대선이 끝난 뒤인 12월 말 김씨가 변호사를 선임할 때 착수금을, 지난 2월에 나머지 비용 등 모두 3,300만 원을 입금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김씨가 민주당 당직자들을 감금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 대한 수임료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명백한 예산 전용이고 배임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지난 4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선 개입 사건을 '개인적 일탈 행위'로 규정했다. 이 말대로라면 일탈 행위로 인한 개인적인 소송에 국가 예산을 지원했다는 애기다. 그렇지 않다면 대선 개입 사건이 국정원의 조직적 업무 행위였음을 시인하는 셈이 된다. 어느 경우든 국정원은 책임을 피해갈 수 없게 돼있다. 국정원은 공금 사용이 부적절하다는 말이 나오자 뒤늦게 2,200만원을 간부들의 활동비에서 갹출해 채워 넣었다. 스스로의 판단으로도 떳떳하지 못한 행동임을 인정한 것이지만 직원들에게 돈을 거뒀다 해도 결국 국정원이 대신 내줬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일반 기업도 임직원이 비리를 저지른 경우 변호사 비용을 회사 돈으로 내준 게 확인되면 횡령과 배임 혐의로 처벌받는다. 하물며 정부기관이 소속 공무원의 수임료를 국고에서 내줬다면 그 엄중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때도 증거 인멸 과정을 주도했다고 폭로한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의 변호사 비용을 청와대가 대줬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당시 공개된 녹취록에서 청와대 행정관은 "비용 문제는 직접 '당신'이 정리하신다니 자네는 소송 준비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왜 정부기관의 불법행위와 관련된 소송 비용으로 세금을 써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국정원은 대납 이유와 경위를 소상하게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뿐만 아니라 법원에서 김씨의 유죄가 확정되면 구상권을 행사해 예산을 채워놓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황당한 일이 더 이상 재발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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