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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세상] 연말의 ‘지부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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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세상] 연말의 ‘지부지마’

입력
2013.11.0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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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월 7일)이 입동이다. 바야흐로, 본격적으로 겨울이다. 천지에 겨울이 선다니 괜시리 마음이 스산해진다. 한 해의 끝자락이 벌써 다가왔는데,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새삼 곰곰이 따져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10월에 각종 일이 겹쳤고,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좋은 일이 많아 다행이었지만 세상사가 언제나 그렇게 좋기만 할 수는 없는 것. 좋을 때 더 삼가고 주위와 이웃을 더 생각하라는 말에 저절로 조심스러워진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터에 어제 집에 들어가니 어떤 재단에서 보내온 내년 수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014년 다이어리를 보내드립니다. 하시고자 하는 일 모두 성취하시고 건강과 행복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라는 인사장이 들어 있었다.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조급해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2013년 한 해가 다 가고 있다는 실감을 하게 됐다.

사실은 이 수첩보다 먼저 연말을 느끼게 한 게 있다. 백화점의 연말연시 크리스마스 대목을 노린 장식이다. A백화점은 이미 10월 하순에 건물 외벽을 눈 모양과 사슴 장식 등으로 휘황찬란하게 만들었다. 매년 맞는 크리스마스이고 연말연시지만 백화점의 장식은 점점 더 빨라지고, 점점 더 화려해지는 것 같다.

연말장사를 더 길게 하려는 생각이겠지. 이런 장식에는 어쩔 수 없이 그 백화점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나게 마련이지만, 이 백화점은 언제나 다른 곳에 비해 극성스럽고 요란하다는 생각을 먼저 갖게 한다.

그런 휘황한 장식과 요란한 유객행태를 보면서 사람들은 기분이 풍성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질까. 말을 바꾸면 흥이 날까.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한 해가 다 가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면서 괜히 마음이 급해지고 초조해지는 게 아닐는지.

글을 쓰면서 여러 번 써먹은 말이긴 하지만, 술꾼은 연말이 되면 더 바빠진다. 이런저런 모임이 잦아지고 그 모임마다 다 의미와 재미가 있으니 즐거운 술자리가 되도록 앞장서서 선동하다 보면 연말을 잘 넘기기는 신체적으로 쉽지 않다. 젊은 시절엔 연말만 되면 가족들이 나를 걱정하곤 했다. 집은 제대로 찾아오는지, 어디 저 눈밭에 쓰러져 한 마리 사슴처럼 얼어버리는 게 아닌지 하는 걱정이었다.

지금은 그런 정도로 무리하지는 않지만, 가끔 흥이 나면 걷잡을 수 없게 되니 문제다. 어제도 실은 대낮에 점심식사를 하면서 폭탄주로 즐겁게 어울리다 보니 오후의 일이 엉망이 돼버렸다. 어제 해야 할 일을 제때 처리하지 못해 오늘로 일이 넘겨졌다. ‘지부지마’(지가 술을 붓고 지가 마시는 것)를 연말을 넘기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때의 지부지마는 자업자득이라는 말과 같다. 2013년을 잘 넘겨야 할 텐데.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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