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6일 통합진보당에 대해 헌정사상 첫 정당해산 심판 심리를 시작한 가운데, 헌재가 2004년 낸 관련 연구보고서에서 연구진이 "정당해산이 급진정당을 막는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힌 것으로 드러나 주목된다. 한국공법학회가 헌재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정당해산 심판제도에 관한 연구'는 이 제도와 관련해 헌재가 발간한 유일한 연구서로, 심리 과정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쟁점을 두루 다루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진은 "정당해산 제도는 민주헌정 보호 수단으로 현실적 효용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가장 효율적 방법은 이를 부정하는 세력과 공개토론을 통해 정치적으로 투쟁해 이들이 선거에서 패하게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험하고 귀찮은 길을 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면역력을 강하게 한다"며 정당해산 제도를 활용하는 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보고서에는 "급진세력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은 기존 체제의 설득력, 통합력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가 대부분"이며, "급진세력을 불법화하는 쉬운 방법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없다"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연구에 참여했던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당해산 제도는 양날의 검으로 해산 청구가 인용돼도 특정 신념을 가진 세력을 없앨 수 없고, 오히려 지하로 잠적해 국가 감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정당해산 제도를 처음 도입한 독일도 민주주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없던 1950년대 두 차례 이를 활용했을 뿐"이라며 "이후에도 극우ㆍ극좌정당 활동이 있었지만 국민들이 지지를 하지 않아 도태될 것이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이 제도 사용을 자제해왔다"고 덧붙였다.
정당해산 청구 남용이 오히려 더 강력한 급진세력 등장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독일연방정부는 2001년 극우 신나치주의 정당인 독일민족민주당의 해산 심판을 청구했지만 증언의 신빙성 문제 등으로 논쟁이 가열됐고, 연방헌법재판소는 2003년 심판 정지를 선언했다. 이후 2004년 9월 실시된 주의회 선거에서 이 정당은 작센주에서 9.2%를 득표하며 40여년 만에 주의회에 진출하는 등 오히려 세를 키웠다. 연구진은 "극우정당의 확산을 막는 수단으로 정당해산을 청구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 보고서는 ▲정당 목적의 위헌성 판단 근거 ▲정당에 속한 기관이나 일부 세력의 행위를 정당의 행위로 간주할 수 있는 범위 등 정당해산 심판과 관련한 첨예한 쟁점들에 대해 두루 의견을 밝히고 있어 이번 사건에도 상당한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헌재는 이날 전자추첨을 통해 이번 사건의 주심을 이정미(51ㆍ사법연수원 16기) 재판관으로 결정했다. 또 연구관 여러 명으로 별도 연구팀을 꾸려 사건을 검토하기로 했다.
통진당은 이날 정부 규탄 결의대회와 선전전, 촛불집회를 잇따라 열며 강력 반발했다. 오병윤, 이상규, 김선동, 김미희, 김재연 의원 등 소속 의원 5명 전원이 삭발을 했고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기자회견도 열어 정부 조치를 비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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