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한다고 밝힌 통합진보당 강령은 지난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 강령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민노당과 통진당에서 활동했던 관계자들은 "민노당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외연 확대를 꾀하고 있었던 만큼 사회주의 지향성을 강조한 기존 강령에서 일부 과격한 표현들을 삭제하거나 순화하는 방식으로 강령을 개정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민노당은 2000년 강령 전문에서 당의 활동 목적과 관련해 '외세를 물리치고 반민중적 정치 권력을 몰아내 민중이 주인 되는 진보정치를 실현한다'고 적시했다. 이는 2011년 6월 개정을 통해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자주적 정부를 세우고, 민중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진보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겠다'고 수정됐다. 법무부가 이적 이념으로 제시한 '민중주권주의'를 2000년부터 13년 간 견지하고 있던 셈이다.
다만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표현은 민노당(현 통진당)이 2011년 진보신당 탈당파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앞두고 강령을 개정하면서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표현을 삭제하는 대신 추가됐다. 이와 관련, 조연현 성공회대 교수(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장)는 '진보적 민주주의' 개념에 대해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용했던 말이라고 해서 개념도 같은 것으로 등치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진보적 민주주의는 김일성뿐만 아니라 해방공간에서 여운형 등 여러 정치세력들이 내세웠다.
민노당 강령은 외교ㆍ통일과 관련해 ▲7ㆍ4 남북 공동성명ㆍ남북기본합의서 존중 ▲자주적ㆍ평화적ㆍ민족화합적 통일 ▲남북과 미국 3자간 평화협정 체결 ▲불평등한 한미 군사조약ㆍ행정협정 폐기 ▲핵무기 철거 ▲주한미군 철수 등을 강조했다. 반면 통진당 강령에는 7ㆍ4 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외에 6ㆍ15 공동선언, 10ㆍ4 선언 이행을 추가한 것 외에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 ▲한반도ㆍ동북아의 비핵ㆍ평화체제 조기 구축 ▲주한미군 철수 ▲종속적 한미동맹체제 해체 등으로 크게 바뀐 내용은 없다. 경제와 관련해서도 통진당 강령은 독점재벌 중심 경제체제 해체 등 민노당 때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노동과 관련해선 민노당 강령의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표현은 통진당 강령에서는 '노동 존중'으로 바뀌었고, '노동하지 않는 사람이 노동자를 지배하는 노동배제적 경영방식 종식' 이라는 표현은 아예 삭제되면서 당내 민중민주(PD)계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실제 25페이지에 달하던 민노당의 강령이 통진당에선 5페이지 분량으로 축약되는 과정에서 '노동' '계급' '소수자''사회주의' 등의 표현이 줄어들면서 당내 일각에선 "강령의 급진성이 후퇴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강령 내용의 성격으로 보자면 정부가 2000년에 이미 조치에 들어갔어야 했다"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판결도 나지 않은 상황에서 정당해산 심판을 한 것을 보면 현 정부의 목적이 다른 데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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