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계가 한국인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잇단 배상명령 판결이 한일 경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일본 재계의 이 같은 주장이 양국의 경제 관계를 도리어 위축시킬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일본상공회의소, 경제동우회 등 일본 재계 3단체와 일한경제협회는 6일 '우호적인 한일 경제관계의 유지 발전을 향해'라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을 기초로 양국 경제관계가 순조롭게 발전해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반도 출신 민간인 징용노동자 등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청구권 문제가 향후 한국을 상대로 투자나 비즈니스를 하는데 장애가 될 뿐 아니라 한일 양국의 무역투자관계를 냉각시키는 등 양호한 한일 경제 관계를 훼손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고 한일 양국과 양국 경제계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주지법이 1일 양금덕(82) 할머니 등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하는 등 한국에서는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잇따르고 있지만 대법원 판결은 아직 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일본 재계가 입장문을 발표한 것은 한국 사법부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게다가 이들의 입장문이 이제껏 일본 정부가 주장한 내용을 답습한 것이어서 일본 정부와 사전 조율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이 지난 달 작성해 홈페이지에 공개한 '최근 한일관계'라는 문서에도 "한일간 재산 청구권 문제는 한일청구권협정 등에 의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이 (일본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국제법이 한국의 국내법에 우선한다면서 한국 대법원이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을 확정할 경우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 내 사법절차가 진행중인만큼 좀 더 기다려 볼 필요가 있다"며 "일본 재계의 단체 행동이나 메시지 발신이 양국 관계를 위축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아시아 전문가인 도코 가즈히코 교토산업대 교수는 "일본 기업들이 일본 정부 방침에 따라 배상 판결을 거부하고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재산이 강제 집행되는 모습이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된다면 양국 관계가 회복 불가능한 사태로 치달을 수 있다"며 "양국 정부가 돌파구를 찾기 위해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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