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설의 '한파특보'에서 인물들이 실감하는 '때 이른 추위'는 가부장적 폭력을 잔인하게 드러내는 상징일 뿐만 아니라 선거 이후에도 다름없이 반복될 엄혹한 생존 현실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소설 속의 아버지는 개발과 성장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세대의 자기분열과 왜곡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식구들에게 섬뜩한 폭력을 휘두르며 "누구 때문에 이만큼 살게 됐는데!" 라고 외치는 아버지의 모습은 괴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우리 안의 현실 그 자체다.
그리하여 이 소설이 주는 참혹한 긴장은 매맞는 끔찍한 장면보다도 오히려 고단한 노동을 마감하며 치킨과 맥주 속에 인물들이 소소하게 나누는 대화에서 감지된다. 거대한 폭력의 현실 속에서도 두 눈 부릅뜨며 하루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일상의 삶은 읽는 이로 하여금 서늘한 고통을 느끼게 한다. 가족과 일상에 대한 성찰이 사회 현실의 구조적 폭력의 성찰과 연결되는 지점을 예리하게 부각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최근의 한국소설에서 주목할 성취를 보여준다.
한국일보문학상 예심위원 백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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