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함으로써 향후 야권의 새판짜기 구도는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헌재 심리가 내년 지방선거까지 계속될 경우 공안정국 여파로 야권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공산이 커졌다.
야권은 2012년 통진당의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 이후 통진당과 거리두기 행보를 이어왔다. 특히 이석기 의원이 주도한 RO 사건이 터진 이후로는 '종북'의 불길이 옮겨 붙을 것을 우려해 통진당을 사실상 야권에서 제외시켜온 게 사실이다. 민주당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만든 '신(新)야권연대'에도 통진당은 빠져 있다. 특히 지난해 총선 당시 야권연대를 통해 진보당의 원내 진출을 도왔다는 '원죄'를 갖고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통진당과 완전 결별함으로써 '종북'꼬리 표를 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이 제각기 전열을 가다듬고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 와중에 불거진 진보정당의 소멸 위기라는 새로운 변수는 적잖은 파장을 낳을 수 있다. 당장 10ㆍ30 재보선 패배 이후 당내 역학구도의 변화 조짐이 일고 있는 민주당이 직접 영향권에 들 수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통진당과 손을 잡았던 '친노그룹'의 목소리가 일단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안철수 신당' 및 정의당과의 '신 3각 연대'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안철수 의원이 전면적인 연대에 부정적 입장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통진당 사태는 야권연대 출범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더구나 헌재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사회 전반적으로 보수화 경향이 강해진다는 점은 야권 전체에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여론을 자극하는 이슈가 보수적 담론으로 채워지면서 야권 전체가 급속히 위축되면 지방선거는 힘겨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이날 내놓은 공식입장에는 이런 복잡한 속내가 그대로 반영돼 있다. 김관영 대변인은 "제도권 동료정당으로서 헌정사상 초유의 불행한 사태에 매우 유감"이라며 "어떤 경우에도 대한민국의 국체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유지돼야 하고 모든 정당의 목적과 활동도 그 범주에서 보호돼야 한다"고 애매한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정의당 이정미 대변인은 "국민의 정치적 선택에 제약을 가하며 정부가 나서서 특정정당의 해산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민주당과는 결을 달리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헌법적 가치를 지키려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공세적으로 나왔다. 유일호 대변인은 "헌법재판소는 신속한 결론을 내려 더 이상의 혼란을 막고 대한민국 헌법적 가치와 법질서를 지켜주기 당부한다"고 밝혔고,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주의자들이 국회에까지 진입하는 것을 국민이 걱정하는 시점에 아주 적절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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