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대통령 선거 개표 방송을 보다가 울분을 이기지 못해 취해 뻗어버렸던 날 그의 '태그호이어' 손목시계가 멈추었고, 그래서 그는 홧김에 그 시계를 30만원에 팔아버렸는데, 몇 달이 지나 지금은 봄, 벚꽃 풍경을 취재하러 경주 남산에 갔다가 목 잘린 불상을 보며 '폐허의 풍경'을 음미하고 있자니, 그에게 그 시계를 선물한 옛 애인에게서 문득 연락이 온다. '시계, 돌려줘.'
자, 이제 둘은 함께 시계를 찾으러 갈 것이다. 마침 벚꽃 세상이라서 이 재회는 둘의 마음을 어지럽게 할 것이다. 시계방 노인을 만날 것이고, '이야기'를 하고 듣는 일과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일의 의미를 배우게 될 것이며, 사랑하는(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은 어떤 것도 결코 '헛된 시간'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연애를 시작할 것이다.
김연수의 근작들이 예전보다 소소해졌다는 심사평도 나왔지만, 김연수의 소설이 거의 그렇듯, 이 작품도 '한낱' 연애소설만은 아니다. 이 나라에 대한 어떤 희망과 연애해 온 이들에게 작년 12월 19일은 깊은 실망의 날이었을 텐데, 이 소설은, '우리'가 함께 한 시간들 중 헛된 시간 따위는 없을 것이라고 힘껏 말해준다. 떨어진 불상 머리를 껴안는, 보리수나무 뿌리 같은 소설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