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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작 지상중계] 구병모 <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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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작 지상중계] 구병모 <파과>

입력
2013.11.0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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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너는 저리로 나가야 해. 앞발만 톡 대도 열리는 거 봤지? 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다 서서히 굶어 죽는 건 딱 질색이다. […]어느날 아침 네가 눈을 떴을 때 내가 누워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면, …그때도 너는 저리로 나가야 해. 누군가 도와줄 사람을 구해 오라는 게 아니야. 그때 나는 이미 살아 있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너는 살아야 해. 만일 저 문이 열려 있지 않다면 너는 배고픔에 지쳐가다 결국 내 시체를 뜯어 먹기 시작할 거다. 그래도 나는 별로 상관없다. 그걸로 너한테 잠깐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하지만 …그들이 너를 보면 안락사를 시킬 거란다. …아무도 거기까지는 말 안 할 테지만 …네가 너무 늙어서 누구도 너를 맡으려 하지 않을 게 뻔해서 그렇다."(135~136쪽 중)

위의 긴 인용은 (자음과모음 발행)의 주인공인 노부인 킬러 '조각(爪角ㆍ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발톱이나 뿔)'이 위험한 '방역' 작업을 나가기 전 유일한 가족인 늙은 개를 무릎에 앉혀놓고 하는 말이다. 이 장면에는 소설의 주제가 강렬하게 녹아 있다. 늙는다는 것이 불러일으키는 슬픔과 공포와 연민과 회한이 한데 뒤엉킨 복잡한 감정. "당신이나 나나 소멸의 한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서글픔"같은 것이다.

구병모 작가는 냉장고를 열었다 뒤늦게 발견된 변사체처럼 눈앞에 펼쳐진 과일을 보고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 앉아 한동안 넋을 잃은 적이 있다. "나는 이렇게 된다(그것도 인생에 급변수가 없다는 전제 하에.)" 소설 가 잉태된 순간이었다.

조각은 자신이 낳은 신생아의 안전을 위해 아이를 입양 보낸 직후 한 장뿐인 사진을 난로에 던져 넣을 정도로 냉혹한 직업인이었다. 하지만 패대기쳐진 수밀도 같은 나이에 이르러 느닷없이"정신적 사회적으로 양지바른 곳의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위험한 욕망을 품게 된다.

'방역'작업 중 불의의 역습을 받아 흙바닥에 얼굴이 짓눌렸을 때조차 깡마른 백발의 이 할머니 킬러는 중얼거린다. "…너 몇 살이냐.[…] 어린놈의 새끼가 처음 보는데 꼬박꼬박 반말이야." 만일 현실 세계에 여성 킬러라는 직종의 인물이 실제로 있다면 아마 이런 사람이지 않을까 싶게 생생한 인물이라 총과 칼과 화학물의 온갖 살인 병기들을 능숙하게 휘두르는 그녀의 버석한 손끝으로 왠지 파나 마늘 냄새가 날 것만 같다.

소설은 한 손을 잃은 조각이 오랜 망설임 끝에 네일케어를 받고 나오는 장면으로 끝난다. 밤하늘의 별, 아니 과일들처럼 빛나는 손톱을 바라보며 조각은 미군 부대 판자촌에서 열 다섯 살 소녀의 재능을 발굴하고 육성해준, 생의 유일했던 남자 류를 떠올린다.

"이 순간 그녀는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자신의 손톱 위에 얹어놓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라진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그래서 아직은 류, 당신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야."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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