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등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비롯해 나치 정권이 강탈한 미술품 1,500여점이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고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가 보도했다. 나치 약탈 미술품 환수 노력의 가장 큰 성과로 평가받는 이번 작품들의 가치는 도합 10억유로(1조4,330억원)로 추산된다.
포쿠스에 따르면 독일 세관은 2011년 2월 탈세 혐의를 받던 코넬리우스 구를리트(80)의 뮌헨 아파트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미술품을 발견했다. 유화, 수채화, 석판화, 목탄화, 스케치 등 회화가 주종을 이루는 이들 작품은 식품 창고로 조성된 어두운 방에 있었다. 포쿠스는 세관 관계자를 인용해 "미술품들이 부패한 음식, 통조림들과 함께 방치돼 있었다"며 "피카소의 그림은 통조림 사이에 처박혀 있었다"고 전했다.
구를리트는 화상이었던 아버지 힐데브란트 구를리트(1895~1956)로부터 미술품을 물려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아버지는 나치 정권이 표현주의, 큐비즘, 초현실주의 등 당대 미술 사조를 퇴폐적이라고 공격하며 작가나 유대인 수집상으로부터 작품을 강탈해 1937년 뮌헨에서 '퇴폐미술전'을 개최하는 과정에 협력했다. 나치와의 연줄을 통해 전시품을 헐값에 사들여 차익을 남기던 그는 나치가 패망하자 소장품이 폭격으로 소실됐다고 속이고 아들에게 상속했다. 아버지의 유산을 한 점씩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구를리트는 2010년 스위스에서 그림 값을 받아 돌아오다가 외환 소지 한도 초과로 독일 당국에 적발됐고 이듬해 자택 압수수색을 받았다. 그는 현재 탈세 및 돈세탁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독일 당국은 작품들을 압수해 뮌헨 외곽의 세관 창고에 보관하면서 원주인을 찾아 돌려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품 반환이 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비공개로 진행되다 보니 목록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피카소, 마티스, 샤갈 외에 에밀 놀데, 파울 클레, 프란츠 마르크, 막스 베크만,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등 유명 독일 화가들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술사학자 마이케 호프만은 "압수된 그림 중 최소 200점이 실종 신고가 돼 있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이 중 마티스 작품은 여성 초상화로 프랑스의 유대계 화상 폴 로젠버그가 갖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로젠버그는 프랑스의 저명 언론인이자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전 부인인 앤 싱클레어의 조부로, 싱클레어는 조부의 소장품을 비롯한 나치의 약탈 미술품 환수 운동을 적극 펼쳐왔다.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나치가 압수한 미술품 규모를 1만6,000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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