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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11월 5일] 문학상은 미스코리아 대회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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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11월 5일] 문학상은 미스코리아 대회가 아니므로

입력
2013.11.04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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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이 '본심 후보작가 릴레이 인터뷰'를 시작한 것은 2006년도였다. 당시 문학상을 운영하는 신문사들이 경쟁적으로 시작한 이 '후보 인터뷰'를 한국일보도 도입하자고 했을 때, 때마침 문학 담당을 맡게 되었다. 경쟁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독자들로부터 한없이 멀어지고 있는 문학작품과 작가들을 이번 기회에나마 상세히 소개해보자는 선한 취지였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엉뚱한 데서 작은 제동이 걸렸다. 전임자였던 선배가 따로 불러 얼굴을 붉히며 반대했던 것이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도 아니고 작가들을 상대로 뭐 하는 짓이냐"는 비판이었다. 미스코리아 후보들은 본인이 직접 원서라도 접수했지, 조용히 자기 작품 쓰는 작가들을 수상이 결정된 것도 아닌데 왜 불러내는 것이며, 그랬다가 수상을 못 하게 되면 작가가 민망하지 않겠느냐는 그런 요지였다. 뽑는다는 행위 자체에 불가피하게 배제라는 폭력적 요소가 수반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미스코리아 대회와 견주는 것은, 참,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제 와서 생각하니 명명 자체도 참으로 비문학적인, '후보 릴레이 인터뷰'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7년 후. 다시 문학 담당이 돼 한국일보문학상을 진행하면서 선한 의도로 시작된 '후보 인터뷰'가 다양한 딜레마의 형태로 '관행의 흑역사'를 축적해왔음을 깨닫게 됐다. 한국일보문학상 후보만 5년째로 4년 연속 인터뷰를 한 작가가 있는가 하면(인터뷰를 했던 기자들만 매년 바뀌어 새로움을 만끽했다), 다른 문학상의 후보로 크게 인터뷰가 실렸다가 수상에서 빗겨났는데 그 작품이 또 다시 후보작이 돼 인터뷰를 해야 하는, 작가와 기자 모두 난처한 경우도 있었다.

혹은 몇 달 전 작품이 출간됐을 당시 이미 인터뷰를 해서 대대적으로 기사가 나갔기 때문에 "후보가 된 기분이 어떠신가요" 같은 질문을 할 무지맹랑의 호연지기가 없다면 인터뷰를 하는 게 실상 의미가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올해 본심작 10편 중 단행본이 출간된 작품은 여섯 편인데, 그 중 다섯 편은 이미 작가 인터뷰가 한국일보에 실렸던 작품들이다.

이런 불편하고도 당혹스러운 상황이 속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요청을 하면 작가들은 거의 인터뷰에 나온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묻는 물음이 단지 언제 어디로 나가면 되는지를 묻는 질문이 아니었음을 실은 이제야 깨달았다. 하고 싶지는 않지만, 불편하고 때로는 불쾌하지만, 담당 기자를 문제적 상황으로 몰아넣고 싶지는 않다는,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너를 위해 그것을 하겠다는, 거창하게 말하자면 문학정신 같은 것의 발로였던 셈이다.

문득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노벨문학상에 대해 생각해봤다. 후보가 누구인지도 공표되지 않은 채 매년 깜짝 발표되지만 온 세계가 숨죽여 기다리는 그 상. 인터뷰는커녕 후보에게조차 사전 통보가 가지 않아 세계 최고 수준의 언어기술자들이 한결같이 "깜짝 놀랐다" "믿어지지 않는다" 같은 반응을 내놓는 그 상. 수상자 발표가 났을 때 영국 소설가 도리스 레싱은 시장에 장보러 갔었고, 앨리스 먼로는 세상 모르고 자던 중이었다. 더구나 이 두 작가는 건강을 이유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발표했지만, 그것 때문에 노벨문학상의 권위가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스웨덴 한림원에 한 명도 없을 것 같다.

북유럽의 높은 인권감수성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한 언론사가 문학상이라는 제도를 통해 문학을 격려하고자 한다면, 그 과정이 이토록 비문학적이어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일보 문화부장과 편집국장의 결재를 받았으므로 한국일보사의 공식 입장이다. 문학상은 미스코리아대회가 아니므로 "한국일보는 올해부터 한국일보문학상 후보 인터뷰를 하지 않겠습니다."

인터뷰 약속을 잡았던 작가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말을 건넸을 때 수화기 저 편에서 건너오던 작은 환호와 반색과 안도의 한숨. 다음주면 한 명의 수상자가 정해질 테고, 수상자와는 인터뷰를 하게 될 것이다. 미리 이 난을 통해 인터뷰를 못하는 아홉 분의 작가분들께 고개 숙여 인사 드리고 싶다. 그 작품을 써주셔서 올 한 해 제 삶에 행복한 순간들, 반짝이는 찰나들이 있었습니다.

박선영 문화부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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